[책마을] "산에 미쳤던 그놈, 박영석…내 히말라야 등정은 인연 덕"
히말라야는 ‘신들의 고향’이라고 불린다. 접근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다. 만년설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 있다. 해발 8000m 지점의 산소는 지상의 3분의 1밖에 안 된다. 극한의 추위와 바람은 서 있기조차 힘들다. 산악인 엄홍길 대장은 그런 히말라야의 8000m 이상 봉우리 16좌 모두에 태극기를 꽂았다. 세상에서 그런 일을 해낸 사람은 엄 대장이 처음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엄 대장은 “다 인연 덕”이라고 말한다. 함께 등반하면서 고락을 나눈 이들과의 인연이 자신을 히말라야로 이끌었다는 것. “죽음의 지대에서 살아 돌아와 숨쉬고 있는 것도 그들과의 인연 속에서며, 그동안의 성공 또한 모두 그들과의 합작품”이라는 설명이다.

《내 가슴에 묻은 별》은 엄홍길 대장의 남다른 인연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히말라야에서 만나고 떠나 보낸 이들의 이름을 하나씩 부르며,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신의 인연을 추억한다.

[책마을] "산에 미쳤던 그놈, 박영석…내 히말라야 등정은 인연 덕"
엄 대장은 박영석 대장과의 인연 이야기로 입을 뗀다. 박 대장은 2011년 안나푸르나(8091m) 남벽에 코리안 루트를 내기 위해 올랐다가 실종 상태다.

오랫동안 같은 길을 걸어온 박 대장은 엄 대장의 후배이자 동료였다. 1989년 겨울 네팔 카트만두에서 박 대장을 처음 만난 순간, 박 대장이 랑탕리 등정에 성공하기까지 1주일간 함께 지낸 일, 1992년 여름 낭가파르바트(8126m)에 도전하다 오른쪽 엄지와 검지 발가락 일부를 잘랐을 때 박 대장이 용기를 북돋워준 일 등을 통해 산사나이들의 끈적한 우정과 의리를 전한다. 그러면서 “산에 미쳤던 그놈, 박영석”을 부르며 가슴을 친다. 함께 산을 오르다 목숨을 잃은 여성 산악인 지현옥, 그의 후배이자 분신으로 여긴 박무택, 동상으로 잃은 엄지 발가락만큼 아파하는 후배 박병태 등에 대한 기억도 털어놓는다. 에베레스트를 처음 등정한 에드먼드 힐러리, 스페인의 산악 영웅 후아니토 오이아르사발 등 자신의 인생에서 많은 도움과 사랑, 힘을 준 또 다른 멘토들의 이야기도 한다. 엄 대장은 2008년 만든 엄홍길 휴먼재단을 통해 네팔에 학교를 짓고 있다. 2009년 팡보체 마을(4060m)에 초등학교를 지었고, 지난 2월 카스키 지역에 네 번째 초등학교 기공식을 가졌다. “1년에 한 개씩 16개의 학교를 지을 작정입니다. 세상에 어렵지 않은 일은 하나도 없지만, 자신 있어요. 이제 히말라야 8000m가 아닌 인생의 8000m를 올라야죠.”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