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동서고금 속담ㆍ음담패설 보니…세상만사 인간사 다 똑같아!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랴(한국), 갯버들 있는 곳에 물이 있다(우크라이나), 벌이 눈에 띄면 가까이에 꿀이 있다(러시아), 나무가 흔들리는 것은 바람이 불기 때문이다(아프가니스탄), 재는 불이 있었다는 증거다(베네수엘라).

우선 놀랍다. 한 사람이 이렇게 방대한 자료 연구를 해냈다는 것과 그 열정에 찬사를 보낸다. 일본 작가이자 통역사인 요네하라 마리의 《속담 인류학》은 세계 각국의 속담을 통해 인류사를 조명해 놓은 책이다. 스물아홉 개의 주제로 엮은 에피소드를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지적이면서도 음란하고 노골적인 ‘콩트’들은 그저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행간에 녹아 있는 현실참여적인 독설, 구체적으로 미국 정부의 대외 정책에 대한 비판의 날이 날카롭다. 옮긴이의 말처럼 미국에 대해 이처럼 거리낌 없이 두들겨 패는, 아니 ‘까는’ 예는 일찍이 본 적이 없다. 그것도 미국의 혈맹이라는 일본에서, 가부장적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일본의 여성작가가 말이다. 러시아어를 전공한 저자는 옐친과 고르바초프 전담 통역사였다는 점에서 그 비판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런 이유로 책을 읽다보면 속이 후련해질 사람들 만큼이나 강한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도 적지 않을 듯 하다.

다른 듯 하면서도 같고, 같은 듯 다른 세계 각국의 속담들을 시사 이슈에 엮어내는 솜씨가 절묘하다. 머리를 많이 굴리지 않아도 책장이 쉬이 넘어가는 것은 저자의 입담도 좋거니와 수년간 잡지에 연재된 이야기들인 까닭이다.

책을 덮고 난 뒤 머릿속에 한 줄 깊이 새겨지는 주제 하나.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 거대한 산이 무서운 소리를 내며 요동치자 사람들이 몰려들지만 나타난 것은 고작 쥐 한 마리라는 뜻이다. 물론 유사 속담도 소개한다. 천둥이 울어도 비는 조금(스리랑카), 연기는 풀풀 나는데 꼬치구이는 눈곱만큼(그루지야), 천둥소리 울려퍼졌는데 죽은 건 가재 한 마리(우크라이나). 여기에도 어김없이 등장하는 미국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 2003년 미국은 대량살상무기(WMD)를 숨기고 있다고 이라크를 침공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했다며 21세기 초 대사건을 지적한다. 급기야 ‘극장화 된 군국주의’라는 용어로 미국이 왜 이란 이라크 북한 등의 2급 국가들과의 싸움에 집중하는지에 대한 설명도 덧붙인다. 그런 미국에 빌붙어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기생적이고 식민주의적인 일본 내 보수 경향에 대한 환멸과 함께.

2006년 56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난 저자의 영전에 쓰였을 법한 문구 또한 꽤 인상적이다. “사람은 웃다가 생각을 고치지, 설득당해서 생각을 고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해설을 맡은 요로 다케시 도쿄대 명예교수의 말이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