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과장 & 李대리]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유행어…어디까지 써도 될 지 애매~합니다잉
“안녕하십니까불이~. 신입사원 OOO입니다람쥐~.” 최 부장은 얼마 전 신입사원 환영식에서 한 직원이 자신을 소개하는 모습을 보고 당황했다. 어린애들이나 할 법한 유치한 동작과 함께 ‘까불이’와 ‘다람쥐’를 외치는 모습에 주변을 돌아봤다. 최 부장이 “쟤, 왜 저래~”라고 하려는 찰나, 옆에 있던 김 과장이 벌떡 일어났다. 그는 “OOO씨, 자기소개가 뭐 그래? 장난치지마보이~”라며 손을 내저었다. 최 부장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슬며시 짜증이 났다. 하지만 모두들 배를 움켜잡고 폭소를 터뜨리는 가운데 혼자 멀뚱히 있는 것도 어색해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려다 표정이 구겨지고 말았다. 왕따가 된 기분에 일찍 회식자리를 나온 그는 집에 와 중학생 아들에게 ‘까불이’와 ‘다람쥐’에 대해 물었다. 아들은 말 없이 인터넷을 검색해 동영상 하나를 보여줬다. ‘개그콘서트’의 ‘꺾기도’ 코너였다. 깔깔거리는 아들 옆에서 최 부장은 생각했다. ‘어디서 웃어야 하지….’

유행. 모르면 바보가 되고 과하면 민폐가 된다. 얼마 전 한 개그 프로에서 이런 대사가 있었다. “‘해품달’(MBC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을 안 봤다고? 그게 사람이 할 짓이야?” 물론 웃자고 한 얘기지만, ‘사람이 할 짓이야’라는 표현에 고개가 갸우뚱해지기도 한다. ‘유행 따르기’에도 감각이 필요한 시대. 유행에 얽힌 직장 내 에피소드들을 정리해 본다.

◆유행의 양면성

“헉, 김 부장님도 드라마 보세요?” “그럼, 나 완전 폐인이잖아. 매주 본방사수하는데, 뭘.” 제지업체 김 부장은 부원들과 식사 도중 인기 드라마 ‘샐러리맨 초한지’ 얘기를 꺼냈다. 중국 역사소설 초한지를 좋아했던 김 부장은 우연히 드라마를 접했다가 푹 빠져 매주 챙겨보게 됐다. 평소 묵묵한 일벌레인 줄로만 알았던 그가 ‘폐인’ ‘본방사수’라는 전문용어까지 써가며 다음주 예고편 얘기에 열을 올리자 직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일 이후 부원들이 저에게 훨씬 친근감을 갖게 된 것을 피부로 느낄 정도예요. 드라마 한 편이, 유행어 한마디가 서먹한 분위기를 바꾸는 ‘아이스 브레이킹’ 역할을 한다는 것을 실감하게 됐고요.”

이처럼 드라마나 유행어 한마디가 직장 생활에 윤활유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일상과의 경계가 너무 흐려지면 곤란한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기획팀 직원 박 대리는 지난주 월요일 오전 회의에서 부장의 말에 저도 모르게 “고~뢰?”라고 답했다. 얼른 ‘요’를 덧붙였지만 당황해 얼굴이 화끈거렸다. 최근 개그콘서트에 푹 빠져 무슨 내용의 얘기든 “안돼~” “고뢰~”라고 답하고 보는 습관이 회의 때도 툭 튀어 나온 것. 동료들이 입술을 굳게 깨물고 웃음을 참느라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다행히 부장은 별말없이 박 대리를 물끄러미 바라만 봤다. 박 대리는 속으로 ‘자주 쓰는 다른 유행어가 안 튀어나와서 그나마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 내렸다. 그가 가장 즐겨쓰는 개콘 유행어들은 이런 것들이다. “궁디를 확 주 차 삐까” “나 이런 거 못~해” “아니 아니 아니되오.”

◆유행 스트레스

허 과장은 요즘 수요일과 목요일은 저녁 약속을 잡지 않는다. ‘해품달’을 챙겨봐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재미있는 드라마라도 시간 맞춰 본 적이 없고 특히 사극은 좋아하지 않는 그가 ‘해품달’에 유독 집착하는 것은 부장 때문이다. 다음날 아침 인사를 전날 드라마 얘기로 시작하며 “봤지?”를 연발하는 부장에게 맞장구를 쳐줘야 분위기가 술술 풀린다. 허 과장은 “초반엔 안 보고 버텼는데 한번은 기획안을 올렸는데 ‘꼴도 보기 싫으니 뒤돌아 서 있거라’고 하질 않나, 회의시간엔 ‘그 입 다물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며 “다른 직원들은 웃는데 민망해서 혼났다”고 한다. 여기에 부서 내 허 과장의 라이벌인 조 과장이 부장에게 “명심하겠사옵니다” “하명하시옵소서”라며 맞장구를 쳐대는 것도 신경이 쓰인다.

중소 제조업체에 다니는 박 과장은 사장의 ‘개콘 사랑’이 보통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농담을 즐기는 사장이 개그콘서트에 나오는 이런 저런 유행어들을 섞어 이야기할 때까지는 ‘그러려니’ 했다. 문제는 사장이 개그콘서트의 성공비결과 관련된 기사를 읽으면서부터다. “사장이 개그콘서트의 성공비결로 언급된 개그맨 간의 무한 경쟁을 틈날 때마다 얘기합니다. 거기서 끝내지 않고 개그콘서트의 무한 경쟁 시스템을 회사에도 적용시키겠다며 인사와 관련된 여러 일을 벌이는데 솔직히 너무 피곤해요.”

◆유행 따라하기도 TPO에 맞춰서…

메신저 이모티콘도 빼놓을 수 없는 유행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웃음을 뜻하는 ^^다. 최근 부서를 옮긴 김 과장은 ^^ 때문에 낭패를 본 적이 있다. 그는 부장으로부터 “보고서가 잘못됐잖아, 다시 수정해서 빨리 갖고 와 ^^”라는 메신저를 받았다. 김 과장은 말미에 ^^가 붙어 있는 걸 보고 부장의 지시를 그리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가, 대판 깨졌다.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한 그는 부서에서 오래 근무한 동료의 얘기를 듣고서야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는 부장에겐 마침표와 같은 의미야. 모든 메신저 끝엔 꼭 붙이지. 부장은 아마 ‘너 회사 그만 두고 싶냐’고 혼낼 때도 ^^ 할 걸.”

^^만큼 많이 쓰이는 메신저 이모티콘이 ‘눈물’을 형상화한 ‘ㅠㅠ’다. 신입사원 K씨는 최근 이 표현을 남발했다가 ‘눈물나게’ 혼났다. K씨의 미숙한 업무에 화가 난 팀장이 그에게 ‘똑바로 해. 이런 실수 또 반복하면 그땐 정말 가만 안 둔다’는 등의 험한 표현을 담은 메신저를 보냈다. K가 팀장에게 보낸 답글. “헐, 지송합니다;;;. 앞으로 잘 숙지해서 바로잡겠습니다. ㅠㅠㅠㅠㅠㅠㅠㅠ.” 팀장은 이를 보고 더 화가 났다. “헐? 지송? ㅠㅠ? 너 지금 나랑 장난치냐. 당장 전화해!” K는 전화로 “잘못했다. 주의하겠다”는 말을 입이 아프도록 반복했을 뿐이다.

윤정현/윤성민/고경봉/노경목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