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주의 화가 클로드 모네(1840~1926)는 평생 물가를 맴돌았다. 86년이라는 긴 생애 동안 물가를 떠난 적은 드물었다. 파리에서 태어난 그는 5세 때 가족과 함께 노르망디 해안 도시 르아브르로 이주, 19세까지 그곳에 머물렀다. 결혼 후인 1871년(31세)부터는 파리 서북쪽 센 강변의 아르장퇴유에 셋집을 얻어 살았고 1878년에는 그보다 서쪽으로 이동, 베테유에 둥지를 틀었다. 물론 이곳도 센 강변이었다. 1883년에는 다시 서쪽으로 이동, 센 강 지류로 엡트 강변에 있는 지베르니에 집을 얻어 1926년 생을 마칠 때까지 살았다. 물가에 사는 것도 모자라 모네는 틈만 나면 푸르빌, 디에프, 에트르타, 생타드레스 등 노르망디의 바닷가를 찾았다.

그가 그토록 물에 집착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그가 생각했던 그림의 원리를 물만큼 잘 설명해주는 것은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우리 눈에 보이는 물체는 어느 것도 고정불변한 것이 없고 빛의 변화에 따라 그 형태와 색채가 시시각각으로 변한다고 믿었다. 따라서 그림은 그런 사물의 순간적인 인상을 화폭에 담아야 한다고 봤다. 특히 끊임없이 요동치는 물은 그런 빛의 속성을 가장 예민하게 보여주는 매개체였다. 이 점은 인상파 화가들이 몽마르트르의 카페에서 아옹다옹하며 내린 결론이었지만 모네만큼 그 원리를 고지식하고 열정적으로 실험한 작가는 없었다.

모네에게 물은 곧 자연이 만든 거대한 거울이었다. 이 거울은 빛을 매개로 해 조물주의 창조물을 사람들에게 비춰준다. 우리의 눈이 자연을 바라보는 ‘1차적 렌즈’인데 비해 물은 자연을 그 표면에 반사해 우리 눈에 전달해주므로 그것은 ‘2차적 렌즈’라고 할 수 있다. 1차적 렌즈인 눈이 비교적 자연을 정직하게 비추는 데 비해 2차적 렌즈인 물은 끊임없이 너울대는 수파를 통해 자연의 실상을 왜곡할 뿐만 아니라 빛을 머금고 있어 자연을 변화무쌍한 모습으로 재창조한다.

그런 빛과 물의 관계에 대한 모네의 탐구가 완성된 곳이 바로 지베르니였다. 이곳은 그가 기차를 타고 가다 우연히 발견했다. 그러나 이곳에 안착하기까지 그는 적잖이 마음고생을 해야 했다.

요상한 방식으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마을에 들어왔다는 소식에 마을 사람들은 잔뜩 긴장했다. 더구나 모네는 상처 후 미망인 알리스와 동거하고 있었기 때문에 보수적인 마을 사람들의 호감을 얻기도 어려웠다. 결혼도 하지 않은 중년의 두 남녀가 여덟명의 아이들을 거느리고 산다는 것은 더더욱 받아들여지기 어려웠다. 이른 아침부터 그림을 그린답시고 들판을 해매는 남자의 모습과 화구를 잔뜩 실은 수레를 끌며 그 뒤를 따르는 아이들의 모습은 누가 봐도 꼴불견이었다. 사람들은 이 ‘이상한’ 가족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들의 길을 막고 통행세를 요구했고, 강에서 빨래할 때마다 가축들의 물을 오염시킨다며 비난을 퍼부었다.

1890년 형편이 핀 모네는 살던 집을 아예 사들이고 이곳에 자신만의 정원을 가꾼다. 엡트강이 가까이에 있었지만 그는 좀 더 가까이서 물을 관찰하기 위해 커다란 연못을 만들었다. 연못은 그가 수집한 일본 판화에서 따온 것으로 물 위에는 수련이 가득했고 일본식의 아치형 다리를 설치했다. 그가 이 연못에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지는 수련을 전담하는 사람을 포함, 정원사를 6명이나 둔 데서 잘 드러난다. 만년의 역작인 수련시리즈의 토대가 완성된 것이다.

그러나 그의 물에 대한 탐구는 집에서만 이뤄진 게 아니었다. 그는 자주 엡트강에 나가 수면에 비친 풍경을 화폭에 담았다. 때로는 가족을 모두 이끌고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물론 자신은 한쪽에 이젤을 세워놓고 그림을 그렸지만 말이다. 그가 그림을 그리는 동안 가족들은 뱃놀이에 열중했다. 그러나 그는 가족의 뱃놀이하는 모습도 꼼꼼히 관찰하며 화폭에 담았다. 그런데 이것마저도 인상주의의 원리에 따라 그린 것이었다. 가족도 그의 회화 원리를 구현하는 하나의 소재에 불과했던 것이다.

‘배 위의 소녀들’(1887년)은 이때 그린 작품 중의 하나다. 작은 배 위에는 예쁘게 단장한 모네가(家)의 두 여인이 앉아 서로 시선을 마주하고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공은 보이지 않지만 화면 밖 공간에 자리하고 있고 그림에서는 두 여인의 모습만이 클로즈업돼 있다.

구도는 매우 단조롭지만 인상주의 회화의 원리 덕분에 감상자에게 풍성한 느낌을 전해준다. 한낮의 눈부신 햇살과 푸른 물은 흰옷 차림의 여인들에게 푸르름과 분홍빛을 덧붙였고, 수파 역시 빛과 함께 주위의 물체를 끌어안아 푸른 색, 분홍색, 갈색의 눈부신 선으로 넘실댄다. 사람과 자연이 하나다. 그 속에서 우리는 자연의 리듬과 그가 부르는 잔잔한 노래를 듣는다.

[그림 속의 선율] 은빛 물결 위 두 소녀, 빛을 따라 춤추다
전통회화에서 볼 수 있는 원근법은 이제 아련한 자취만을 남기고 있다. 그러나 모네는 물에 비친 그림자를 통해 자칫 평면적이 될 수도 있는 화면에 깊이감을 부여했다. 말년의 역작인 수련 시리즈가 평면적이면서도 깊이감으로 충만한 것은 이때의 실험에 힘입은 것이다. 모네는 오랜 세월 물과 빛의 관계를 관찰함으로써 자연을 새로운 느낌으로 전달하는 시각의 새로운 세계를 열었고 살아생전 그 공로를 인정받았다. 물과 함께 한 세월이 보상을 받은 것이다.

명화와 함께 듣는 명곡 - 슈베르트의 가곡 '물 위에서 노래함'

프란츠 슈베르트(1797~1828)도 모네만큼 외골수였다. 그는 31년이라는 짧은 생애 동안 남들이 거들떠보지도 않은 가곡을 마치 사명감에 불타는 듯 작곡했다. 그러나 모네의 노력이 살아생전 보상받은 반면 슈베르트는 무명의 설움 속에 스러졌다. 16세 때 교원양성학교 졸업 후 여러 차례 교직의 문을 두드렸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그런 개인사적 불운에도 불구하고 그는 묵묵히 작곡에 몰두, 사후 ‘가곡의 왕’이라는 영광스러운 칭호를 얻는다.

‘물 위에서 노래함’은 더부살이하던 1823년 작곡한 곡으로 저녁 무렵의 뱃놀이를 노래한 것이다. 우리가 즐겨 듣는 곡은 슈베르트 사후 프란츠 리스트가 편곡한 것이다. 애수 서린 선율의 피아노 반주와 부드럽게 물결치듯 오르내리는 소프라노 보이스가 매력적인 곡이다.

모든 것을 반사하는 반짝이는 물결 위로/ 흔들리는 작은 배가 백조처럼 미끄러지네./ 부드럽게 반짝이는 즐거움의 물결 위로/ 내 마음은 배처럼 미끄러지네./ 하늘에서 저녁놀이 파도 위로 내려와 / 배를 둘러싸고 춤을 추네.




정석범 < 문화전문기자·미술사학 박사 sukbumj@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