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 실험 30년…한지에 옻칠 입힌 대작 60점
“2009년 겨울 독일 함부르크에서 1시간 반가량 떨어진 메클렌부르크주에 있는 바드 도버란 작업실에서 고독을 견뎌내며 석 달간 홀로 지낸 적이 있어요. 어느 날 눈이 수북하게 쌓인 작업실 앞뜰에서 무심코 하늘을 쳐다봤는데 고향의 하늘과 똑같더군요.”

오는 6일부터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회고전을 시작하는 한국화가 임효 씨(57)는 “타향에서 본 하늘과 달에서 우리 삶의 애환도 다 하늘에서 나온다는 것을 느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모든 것을 걷어내고 마음속의 본체를 들여다보니 하늘이란 명제가 또렷하게 드러났다”며 “하늘은 세상 사람 모두가 공유하고 똑같이 나눠쓰는 것”이라고 얘기했다.

60세를 앞두고 실험성 강한 청년작가 시절의 화업을 마감한다는 뜻에서 마련한 이번 전시에는 독일에서 시작된 교감과 내면 세계를 담아낸 ‘하늘’ 시리즈와 추상작업 ‘연기’ 시리즈 등 2~3m 대작 60여점을 내보인다.

임씨는 그린다기보다는 만든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시각적인 면보다 촉각적인 면을 중시하는 작가다. 한국화가 중에서 임씨만큼 ‘박제된 정체성’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작가도 흔치 않다.

기성 한지를 마다하고 수제 한지를 이용한다거나 먹을 사용할 때도 자유분방하고 파격적인 방법을 택한다. 한지 작업에 옻칠을 더하기도 한다.

그는 “옻칠을 입히면서 배경은 대체로 어두워졌으나 오히려 ‘우주의 색’이 나와 만족스러웠다”고 설명했다.

“하늘에 디지털 감성을 융합시켜 사람의 인연과 상호관계에 대해 연구했죠. 여기에 옻칠이라는 전통적 기법을 배합해 보존성을 살려냈습니다.”

자유로운 기법을 중시하지만 한국적인 전통의 가치관을 버리고는 작품이 존재할 수 없다고 그는 강조했다.

“K팝은 미국이나 유럽 음악과 다른 한국적 스토리를 융합시켰기 때문에 세계인의 공감을 이끌어냈죠. 한국 현대미술도 한국인의 혼을 담아내지 못하면 세계 시장에서 호응을 받지 못할 겁니다.”

그의 작품세계는 약 10년을 주기로 ‘진화’를 거듭해왔다. 고교 시절 무작정 상경해 그림 공부를 시작한 그는 법관이 되기를 원했던 아버지에게 실망을 안겨줬다. 대학을 졸업하고 금남여중 미술교사로 3년 동안 일하다 그만두고 이대역 주변에 미술학원을 차려 큰돈도 만져봤다.

학원을 접고 전업작가로 변신한 것은 1988년이었다. 이후 수묵 재료를 활용한 ‘생성과 상생’ 시리즈가 탄생했다. 2000년대 재료와 채색, 아크릴, 석채의 구분없이 마음속의 형상을 추상적으로 표현했고, 2010년엔 인연 이미지를 조형화한 ‘연기’ 연작을 내놓았다.

그는 “한국화의 전통적인 소재나 재료, 판에 박힌 기법까지도 작가가 자유로운 상태에서 판단해 선택하는 자세가 중요하다”며 “무엇을 그릴까보다는 어떻게 그릴까를 먼저 생각한다”고 말했다.

내용보다 형식을 중시하고 현실에 맞는 새로운 양식을 개발하는 데 몰두한다는 얘기다.

그는 종이를 직접 제작하는 작가로도 유명하다. 닥나무를 재료로 한지를 만들어 수묵을 우려내고 여기에 전통 한복의 천연염색 과정을 재연한다.

“종이작업 과정에서 작품의 절반가량이 이미 완성되는 셈입니다. 힘든 과정을 거쳐 만드는 종이판은 두꺼운 질감을 돋보이게 해주죠.”

이번 전시에 맞춰 30여년간 그린 작품 2000여점 중 약 700점을 화집으로 묶어냈고 그림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담은 시와 산문, 그림을 엮은 에세이집 《그림 속에 놀다》(나무생각)도 펴냈다. 전시는 13일까지 이어진다. (070)7404-8276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