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이자도 큰 부담인데 굳이 돈을 깔고 앉아 있을 이유가 없잖아요.” 결혼을 앞둔 박모(32·남) 씨는 대출 받아 아파트 전세를 얻는 대신 현재 살고 있는 원룸형 오피스텔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하기로 했다. 대출금 갚느라 빠듯하게 사느니 좀 좁게 살더라도 여유 있는 삶을 살고 싶다는 박 씨의 생각에 예비 신부도 흔쾌히 동의했다. 박 씨는 “주변 친구들만 봐도 예전엔 결혼하면 꼭 아파트에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는데, 지금은 현실적인 선택으로 많이 돌아섰다”고 덧붙였다.

젊은층을 중심으로 집에 대한 가치관이 달라지면서 ‘합리적인 소비’를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서라도 반드시 집을 사야 한다는 ‘소유’ 개념이 사라진 것뿐만 아니라 전월세를 구하더라도 형편에 맞게 경제성과 실용성을 먼저 따지는 똑똑한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
[新주거혁명, 굿바이~아파트] 스마트 소비 시대 가치관의 변화…경제성·실용성 '먼저'
땅콩집 열풍, 과열에 따른 후유증도

2010년 말부터 불어 닥친 이른바 ‘땅콩집 열풍’은 합리적 소비를 원하는 사람들의 심리와 맞물리며 전국을 강타했다. 한 필지에 두 가구의 목조건물을 나란히 짓는 땅콩집은 전원주택과 달리 도시 접근성을 높이면서도 마당이 확보홱募� 장점이 있고 두 가구가 함께 지음으로써 토지 매입과 건축비용 부담을 반으로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크게 어필했다. 이미 영국이나 미국에서는 ‘듀플렉스 하우스’로 널리 보급된 주택 유형이었지만, 국내에는 광장건축사사무소 이현욱 소장이 첫선을 보이면서 ‘땅콩집’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땅콩집은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에 대한 로망이 있으면서도 비싼 가격 부담과 복잡한 과정 때문에 엄두가 나지 않았던 이들에게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로 다가왔다. 물론 어떤 땅을 매입하느냐, 면적을 얼마로 하고 건축과 인테리어 등에 어느 정도의 비용을 들이느냐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겠지만 평균 3억 원대면 근사한 내 집, 그것도 마당이 딸린 단독주택을 갖게 된다는 사실은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보통 단독주택을 소유하려면 최소한 7억~8억 원은 기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아파트에서 땅콩집으로 돌아서는 결정적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지난 한 해는 본격적으로 땅콩집을 짓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인터넷 카페에는 함께 땅콩집을 지을 친구를 찾는다는 글도 심심치 않게 올라왔다. 실제로 가서 보고 싶다는 요청이 쇄도하면서 업체 측에서 ‘오픈하우스’를 열기도 했고 땅콩집 열기의 결과물로 땅콩집들이 모여 있는 타운하우스, 이른바 ‘땅콩밭’도 탄생했다. 수요가 폭발적으로 많아지자 시공사들도 덩달아 늘어났다. (주)땅콩집의 김선우 과장은 “이전에도 듀플렉스 홈 시공 업체들이 더러 있었지만 땅콩집 열풍 이후 많이 늘어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짧은 시간에 엄청난 붐이 일면서 지난해 말부터 과열에 따른 후유증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시공 업체는 늘었지만 급증한 수요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고, 게다가 능력이 되지 않는 시공 업체들까지 붐을 타고 뛰어들면서 부실 시공 사례도 발생했다. 실제 시공 업체와 갈등을 겪었거나 겪고 있는 건축주들의 불만 사례와 하자에 대한 하소연 등이 현재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상태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땅콩집에 대한 열기는 지난해에 비해 한풀 꺾인 상태다. 김선우 과장은 “시공 업체와의 문제가 불거지면서 대중의 심리가 흔들린 것은 사실”이라며 “실제 계약 건수는 줄었지만 문의는 여전히 많아 크게 달라진 게 없다”고 말했다. 일부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땅콩집에 대한 관심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한 건축 전문가는 “합리적인 가격에 단독주택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게 땅콩집의 가장 큰 매력”이라며 “주택에 대한 수요가 증가 추세라 땅콩집의 인기는 당분간 계속되겠지만 영세 시공 업체도 많으니 선택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집 있는 사람들의 ‘이유 있는’ 전세살이

최근 급속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는 도시형 생활주택도 합리적 소비를 원하는 수요자들에게 인기다. 도시형 생활주택은 서민과 1~2인 가구의 주거 안정을 위해 2009년 5월부터 시행된 주거 형태로 단지형 연립주택과 원룸형 2종류가 있다. 국민주택 규모의 300가구 미만으로 구성된다. 부동산 침체와 전세난도 원인이지만 특히 인구고령화와 혼인율 및 출산율의 감소 등으로 2인 이하 가구가 급증하면서 도시형 생활주택에 대한 수요는 앞으로도 계속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국토해양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11월 말까지 도시형 생활주택의 전국 인허가, 준공 실적은 각각 6만9605가구, 1만9009가구로 전년 대비 인허가 물량은 3.4배, 준공 물량은 무려 7배 넘게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아파트 외 주택의 인허가 실적 중 40%가 도시형 생활주택일 정도다. 상황이 이렇자 건설사들도 주택 사업 전략을 바꿨다.

아파트 시장 침체의 대안으로 도시형 생활주택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 중대형 건설사들까지 소형 주택 시장에 뛰어들면서 브랜드형 도시형 생활주택들도 우후죽순 등장했다. 공급 물량의 대폭 증가로 미분양이 속출하고 주거의 질이 저하되는 등 부작용도 없지 않지만 도시형 생활주택을 중심으로 한 소형, 임대주택의 인기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합리적 소비에 대한 욕구는 집을 보유한 사람들의 ‘이유 있는’ 전세살이로도 이어지고 있다. 서울에 자가 주택을 소유하고 있는 이모(38·남) 씨는 높은 대출이자가 부담스러워지자 전세를 주고 현재 경기도에서 전세살이를 하고 있다. 전세금으로 받은 비용 중 일부로 대출금을 갚고 남은 금액으로 다른 전셋집을 마련한 것. 이 씨는 “집값이 오르지도 않는데 비싼 대출이자를 감당하면서까지 굳이 내 집에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 씨 같은 부류뿐만 아니라 내 집이 있어도 직장·교통·교육 등의 이유로 다른 지역에서 전세살이를 하는 가구도 적지 않다. ‘불편하더라도 내 집 살이’를 고집하는 게 아니라 생활 여건이 먼저인 스마트족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주택산업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자가 보유 전월세 거주 가구의 주거 실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자가 보유 전월세 거주 가구는 2010년 114만 가구로 전체 가구의 6.6%, 전체 임대 가구의 15.2%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05년 66만7000가구로 전체 가구의 4.2%, 전체 임차 가구의 10.2%였던 것과 비해 크게 증가한 수치다. 이러한 추세는 특히 수도권과 대도시 지역에서 뚜렷하게 나타났다.

서울은 2005년 전체 가구의 5.6%에서 2010년 10.0%로 두 배 가까이 급증했고 경기도 역시 2005년 전체 가구의 5.4%에서 2010년 8.9%로 증가했다. 주택산업연구원 측은 “주택 구매 능력이 있는 수요자들이 주택 가격이 안정되자 주택 구입을 미루고 주거비 부담이 가벼운 전세 시장을 선호하면서 자가 보유 전월세 거주 가구가 늘어났고 이 때문에 전월세 시장의 수요 증가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라며 “이들은 전셋값이 올라도 상승한 금액의 일부를 자기가 보유한 주택의 전세 보증금을 인상해 충당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전셋값 상승과 지역적 확산의 연결 고리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진영 기자 bluep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