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당신이 가장 간절하게 원하는 것 지금 그것을 하라
나는 27년 동안 암환자들을 위해 메스를 들어왔다. 수술실에서 이렇게 오랜 세월을 보내다 보면, 종교는 없지만 어렴풋하게나마 ‘신의 존재’를 생각해보게 된다. 과학으로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책마을] 당신이 가장 간절하게 원하는 것 지금 그것을 하라
“이제 얼마나 더 살 수 있나요.” 의사라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이런 질문을 받으면 매번 괴롭고 난감하다. 이렇게 묻는 사람들의 절박한 눈빛 속에는 이미 ‘이제는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많은 것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함부로 흘려보낸 과거에 대한 회한, 허락된 시간이 너무 짧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 당장 코앞에 닥친 치료에 대한 두려움,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미안함, 죽음에 대한 공포 등이 그것이다.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이해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는 두려움이 인생을 휘감는 순간, 그의 내면에는 대단히 중요한 변화가 일어난다.

평생 아픈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해온 치유심리학자가 어느 날 갑자기 림프종 4기 진단을 받는다. 그의 인생에 난데없이 ‘죽음의 공포’가 들이닥쳤고, 일상과 자아의 붕괴 앞에서 그는 남을 가르치는 선생이 아닌 ‘인생의 학생’이 되어 ‘진짜 인생’을 배운다. 최근 출간된 《생의 마지막 순간, 나는 학생이 되었다》(쌤앤파커스)는 바로 그 생생한 실화를 담은 책이다.

나는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나 역시 저자와 마찬가지로 삶과 죽음 사이에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직업을 가졌으니 말이다. 아픈 사람의 심리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해왔던 치유심리학자는 어떻게 자신의 병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싸워 이겼을까. 진리라고 믿어온 치유심리학 이론들이 다 옳았을까.

누구나 그렇듯 저자 역시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감기가 아니라, 암에 걸린 이유가 도대체 뭘까’라는 질문을 앞에 놓고 깊은 절망과 고민에 빠진다. “질병은 자연이 인간을 치유하기 위해 기울이는 노력”이라는 융의 말처럼, 그는 몸의 병을 통해 마음의 병을 알게 된다.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며 본성을 억눌러온 과거와 자아를 질식시킨 완벽주의, 평생 되풀이해온 결핍의 상처 등에서 해답을 얻는다. 뿐만 아니라 기적 같은 ‘오늘의 삶’에 눈 뜨고, 암담한 현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심리적 대처법도 스스로 발견해낸다. 평생 남을 가르쳐온 ‘선생’을 벗고 인생을 배우는 ‘학생’이 되어 비로소 죽음의 벽을 넘을 수 있었다고, 저자는 담담하게, 때로는 명랑하게 고백한다.

책의 후반부에는 소울메이트이자 연인인 ‘야나’의 투병을 도우며 곁을 지킨 이야기도 소개된다. 자신보다 1년 먼저 유방암 진단을 받았지만, 병원 치료를 거부하고 대체의학에 매달린 야나는 결국 그의 곁을 떠나게 되고, 저자는 마지막 순간까지 진실한 사랑으로 그녀의 곁을 지킨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이 주는 심리적 고통과 상처, 상실감, 그리고 회복에 대해서, 세밀화를 그리듯 마음결의 변화를 집요하게 기록했다.

얼마 전 영국 가디언지에 ‘죽을 때 가장 후회하는 다섯 가지’를 설문조사한 결과가 나왔다. 대충 예상할 수 있는 것들이다.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닌 다른 사람의 기대에 맞춰 산 것, 일을 너무 열심히 한 것,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않은 것, 옛 친구들과 연락을 끊은 것, 변화를 두려워해 즐겁게 살지 못한 것 순이라고 한다. 이 책의 저자도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투병 이후,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꾼다.

한국인 세 명 중 한 명이 암에 걸린다는 통계는 이미 상식이다. 건강을 자신하는 사람도 가까운 이의 나쁜 소식을 들으면 ‘남 얘기가 아니구나’ 싶어 덜컥 겁이 난다. ‘건강도 신경 쓰고, 주위 사람들도 챙기면서 삶을 되돌아봐야지’ 하다가도, 맹렬히 돌아가는 일상에 파묻히다 보면 어느 순간 그런 걱정 따위는 싹 사라진다. 특히 대한민국의 중장년층은 먹고사느라 바빠서 아이가 자라는 모습도 제대로 보지 못했고, 부모님께 효도 한번 제대로 못하고 살았다. 사랑하는 사람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도 못했다. 소위 성공한 사람일수록 더 하다.

당신에게 허락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해도 계속 그렇게 살 것인가. 지금 너무 바쁘게 달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인생에 대해,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해 다시 한번 곰곰이 반추해볼 시간을 선사할 것이다. 더 늦기 전에, 내 몸과 마음이 더 망가지기 전에, 진정으로 가치 있고 소중한 일들을 하며 살라고 당신의 어깨를 다독일 것이다. 그렇게 살아도 된다고, 내려놓아도 별 문제없다고, 아니 그렇게 해야만 진정 회한 없는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고.

이종인 < 한국원자력의학원 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