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최시중 위원장의 쓸쓸한 퇴장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퇴임식이 열린 22일 오후 5시. 서울 광화문 방통위 건물 14층 대회의실에 직원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최 위원장은 만감이 교차하는 듯한 표정으로 지난날의 소회를 밝히면서 준비한 퇴임사를 읽어내려갔다. 이명박 정부 초기 ‘정권 실세’라는 이름으로 화려하게 입각했던 모습과는 딴판이었다.

직원들뿐만 아니라 업계도 ‘힘있는 위원장’이 방송통신 분야의 산적한 과제를 풀어내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산업의 격변기에 걸맞은 정책 전환을 이루지 못했고, 방송·통신 융합 관련 법령 정비도 실기하기 일쑤였다. 잘만 했으면 최대 치적으로 남았을 수도 있는 종합편성채널 사업자 선정도 마찬가지였다. 가시적 성과에 대한 조급함과 시장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다수 사업자 선정이 겹치면서 당초 목표로 했던 ‘선진 방송환경 구축’과 ‘유료 콘텐츠의 선순환 구조 정착’을 더욱 요원하게 만들어놓았다.

애플 아이폰이 몰고온 충격파에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평이다. 2009년 11월 ‘아이폰 태풍’이 국내에 상륙하면서 한국의 단말기 제조 및 부품업체, 소프트웨어 업체들은 완전히 달라진 사업환경에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최 위원장은 국회에 출석해 아이폰의 뒤늦은 도입을 추궁하는 의원들에게 “그동안 아무도 아이폰에 대한 메시지를 전해주는 사람이 없었다”고 말했다. 2007년 아이폰이 출시돼 이미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스마트폰 열풍이 불고 있었는데도, 취임 후 1년6개월 동안 들여다보지 않았다는 실토와 다름 없었다.

하지만 그의 퇴장은 정책능력의 부재가 아니라 정치력 과신에 따른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퇴임의 결정적 계기가 된 최측근 인사의 비리의혹도 정치권에 대한 금품살포 의혹이 핵심이었다. 현안들을 투명하고 합리적으로 조율하기보다는 엇갈리는 이해관계들을 특유의 ‘정치력’ 으로 풀어낼 수 있다는 그릇된 믿음이 자초한 결과였다.

그가 퇴임하는 날 트위터를 달군 최고의 화제는 인터넷 방송 ‘나는 꼼수다’가 선관위 홈페이지 해킹사건을 다룬 방송이었다. 제작비 100억원을 투입한 어느 종편사의 드라마 시청률이 마침내 0%대로 주저앉았다는 소식과 함께였다.

조귀동 IT모바일부 기자 claymo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