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SNS와 진정한 소통
팔로어만 120만명에 달하는 이외수 씨는 트위터 대통령이다. 그의 한마디에 화천 절임배추가 금세 동이 나고 양평의 오디도 순식간에 다 팔렸다. 그의 멘션을 받은 한 트위터는 평생 영광으로 알겠다고 감사해하기도 했다.

며칠 전 죽은 휘트니 휴스턴의 사망 소식을 처음 전한 것은 속보성에서 단연 최고를 자랑하는 CNN이 아닌 개인 트위터였다. 생생한 사진을 담은 2009년 허드슨강 비행기 추락사고 역시 평범한 트위터 사용자에 의해 세상에 처음 알려졌다. 굳이 사례를 열거하지 않아도 트위터가 이미 속보 경쟁에서 기존 미디어를 넘어선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SNS는 더 이상 인터넷 서비스가 아니라 소통과 미디어 도구로, 아니 그 이상의 의미로 우리 삶에 이미 자리잡았다. 누가 뭐라고 해도 이미 세상은 SNS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대중과의 소통을 바탕으로 하는 SNS 확대가 마냥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양날의 검처럼 우려스러운 면이 있다. 혹여 수많은 팔로어를 보유한 특정 소수 계층만의 논리 확산의 도구로 이용되지는 않을지, 걱정 아닌 걱정이 든다.

무차별 노출되는 SNS는 사회 혼란을 부추기는 괴담의 진원지가 될 수도 있다. 괴담이 아니더라도 140자 단문의 특성상 전후 맥락은 생략된 채 짧게 전달되다 보면 본래 의도와는 다르게 전해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리트위트(RT)는 트위터의 주요 기능 중 하나로 빠른 속도로 전파하게 해주지만 이에 따른 부작용도 있다. 얼마 전 모 방송인의 동영상이 빠르게 유포된 것도 알고 보면 블로그 주소가 리트위트됐기 때문이다. 방송인 김미화 씨도 그가 하지도 않은 말이 원문인 양 리트위트되면서 트위터상에 퍼져나가 곤란을 겪기도 했다.

나 역시 SNS를 이용하면서 때로는 고민에 휩싸인다. 참신하고 유익한 이야깃거리를 계속해서 제공하고 싶은 마음이 때로는 부담으로 돌아오기도 하고, 만인에게 공개되는 SNS상에서 나 자신을 얼마만큼 드러내야 하는지, 어느 정도의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적당할지도 고민이다.

많은 사람이 ‘팔로잉’의 관계를 맺고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지만 그들이 상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공감하는 진정한 의미의 소통을 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트위터 화면에서는 프로필 사진과 함께 팔로잉과 팔로어, 트위트 숫자들이 펼쳐지며 일종의 경쟁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 숫자들이 과연 ‘진정한 소통’을 의미하는 것일까. 단 한 문장이라도 나의 진심을 담고, 단 한 명이라도 나의 말에 공감하며 귀 기울여 주는 것, 그것이 ‘진정한 소통’일 것이다.

소통 없이 사랑을 논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어쩌면 소통이야말로 삶과 사랑의 모든 것인지 모른다.

서종렬 < 한국인터넷진흥원장 simonsuh@kisa.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