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세계 통화전쟁…신뢰 무너진 달러화의 운명은
1971년 8월15일 저녁,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은 당시 가장 인기 있던 드라마를 중단하고 특별 생방송에 출연, 신경제 정책을 발표했다. 정부가 물가를 통제하고 엄청난 수입 과징금을 부과하며, 달러의 금태환을 금지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미국은 거듭되는 통화 전쟁의 결과로 달러에 대한 신뢰가 완전히 무너져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로부터 40여년이 지난 오늘의 세계는 새로운 ‘통화 전쟁(currency wars)’을 벌이고 있다. 달러에 대한 믿음이 또다시 무너질 위기를 맞고 있는 것.

[책마을] 세계 통화전쟁…신뢰 무너진 달러화의 운명은
《커런시 워》(제임스 리카즈 지음, 더난출판)는 미국의 ‘경제 정책, 국가 안보, 역사적 사례’라는 렌즈를 통해 현재의 통화 전쟁을 살펴본다. 또한 벼랑 끝에 내몰린 달러의 운명과 미국이 처한 금융 위기의 심각성을 경고하고 있으며, 효율적인 행동방침을 제시한다.

현재 벤 버냉키 의장이 이끄는 미국 중앙은행(Fed)은 금융 역사상 가장 과감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Fed는 2007년부터 단기 금리를 인하하고 대출을 자유화해 경제 붕괴에 맞서 싸웠다. 이 결과 금리가 제로에 이르렀고, 사용할 총알이 모두 떨어진 듯했다. 그러다가 2008년 새로운 돌파구를 찾았다. ‘양적 완화(quantitative easing)’, 즉 경제를 부양하려는 목적으로 종이돈 공급을 늘리는 조치였다.

Fed의 종이돈 찍어내기는 초인플레이션을 불러올 위험성이 크다. 인플레이션이 소비자물가에 영향을 미치지 않더라도 자산 가격에 영향을 미쳐 주식, 상품, 토지 등의 유형 자산에 버블 현상을 일으킬 수 있다. 이런 버블은 2000년 정보기술(IT)주 거품이나 2007년의 주택시장 거품처럼 자칫하면 순식간에 터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런 상황이 외부와 단절된 상태에서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Fed의 정책 조정이 미 경제에 한정돼 있다면 문제는 달라지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달러 발행은 전 세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Fed는 양적 완화를 실시함으로써 사실상 세계 통화 전쟁을 선포한 셈이다.

통화 전쟁은 한 나라가 무역 상대국들의 성장을 강탈하려 할 때 시작된다. 미국이 국가 수출 진흥책을 발표한 2010년 1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연두 교서에서 향후 5년 동안 미국의 수출을 두 배로 늘리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5년 내에 미국의 생산성을 두 배로 늘리기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미국의 수출 진흥 정책에는 수출 두 배 신장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자국 통화의 가치를 극심하게 하락시키겠다는 암시가 들어 있다.

통화 전쟁의 핵심은 궁극적으로 달러다. 달러의 탄탄대로는 지속될 수 없다. 통화제도 분석가인 저자는 ‘달러의 미래에서 가장 가능성이 낮은 결과는 다수의 기축 통화가 되는 것이고, 가능성이 높은 결과는 금을 통해 활기를 되찾는 방법으로 경제안정을 회복하는 데 가장 효과적’이라고 강조한다. 이어서 ‘오늘날 버냉키가 금에 반대하는 진짜 이유는 금이 화폐 공급을 제약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는 의심이 들 만하다’고 말한다. 버냉키는 무한한 화폐를 창출할 수 있는 중앙은행장들의 능력을 보호하고 싶었을 것이고, 그러자면 금을 포기해야 한다.

Fed가 미국에서 실시한 정책이 초래할 걱정스러운 결과 중 대다수가 이미 다른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다. 미국이 달러를 발행하면 중국에서 인플레이션이 일어나고, 이집트에서 식품 가격이 오르며, 브라질 주식시장에 버블이 생긴다. 종이돈을 찍어내면 미국의 부채가 평가절하되므로 결국 외국의 채권자는 가치가 낮아진 달러로 대출금을 회수하게 된다. 평가절하가 되면 미국이 개발도상국에서 생산한 상품을 들여오는 비용이 올라가므로 결국 개발도상국에서는 수출이 감소하고 실업률이 높아진다. 또한 인플레이션이 일어나면 개발도상국에서 생산에 필요한 석유, 구리, 옥수수, 밀과 같은 원자재 가격이 오른다. 이미 세계는 미국이 유발한 인플레이션에 맞서 국가보조금, 관세, 자본 통제를 무기로 삼아 싸우기 시작했다. 또다시 통화 전쟁이 빠르게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중국 일본 대만은 미국의 국채를 대량 보유하고 있다. 달러 인플레이션이 시작되면 이 국가들이 보유한 미 국채 가치가 하락한다. 한국이 보유한 미 국채의 실질 가격도 떨어져 결국 평가절하를 통해 부가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동한다.

저자는 “한국은 지나치게 강세로 돌아선 원화에 대해 향후 자국 피해를 막기 위해 최근 스위스나 브라질과 유사하게 엄격한 자본통제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강경태 < 한국CEO연구소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