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기피요? 정보가 있어야 지원이라도 해보죠.”

서울의 한 대학 캠퍼스에서 만난 취업 준비생 김인경 씨(25)는 “중소기업 취업은 생각해보지 않았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작년 2월 어문계열 학과를 졸업한 김씨는 1년 가까이 백수로 지내고 있었다. 공기업 인턴으로 2개월 일한 경험을 제외하곤 졸업 후 변변한 일자리를 가져본 적이 없다. 경영학과 복수 전공에 학점 3.6, 915점의 토익점수 등 남부럽지 않은 취업 스펙을 쌓았지만 그가 바라는 대기업 취업문은 좁기만 하다.

그래서 그는 중소기업 일자리라도 구해볼 생각에 모교 취업정보실을 자주 찾지만 생소한 기업 이름에다 근로조건과 급여 등 구체적인 정보도 없어 지원하기가 꺼려진다고 했다.

“방송과 신문에선 구직자들이 눈높이를 낮추라고 하는데 현실을 모르고 하는 얘기 아닌가요. 저처럼 구직기간이 길어지면 급한 마음에 눈높이는 저절로 낮아지는 데 정작 어느 중소기업을 가야 할지 정보를 구할 수 없습니다.”

◆‘눈뜬 장님’식 中企 취업정보

취업 시장에 ‘정보 미스매치’ 현상이 심각하다.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SNS) 등을 통해 취업 정보가 실시간으로 쏟아지고 있다지만 정작 구직자들이 원하는 중소기업 알짜 정보는 ‘하늘의 별따기’처럼 구하기 어렵다.

대다수 중소기업들이 취업정보 포털사이트에 올려놓은 구인 정보에는 급여수준에 대한 설명이 ‘면접 시 협의’라든가 ‘당사 규정’이라고 적혀 있다. 해당 기업 사이트에 들어가봐도 구체적인 채용 조건은 물론 매출액 회사규모 등 구직자들이 참고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정보조차 찾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서울고용센터에서 만난 대학생 이민수 씨(27)는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은 그 회사에 이미 취직해 있는 선배들을 통하거나 각종 뉴스 등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얻지만 중소기업은 ‘안대를 끼고 지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공단이든 어디든 취업할 생각을 갖고 있지만 가장 기초적인 급여수준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으니 막막할 때가 많다”고 전했다.

◆정보 미스매치로 실업 장기화

대한상공회의소가 대학생 3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대학생 응답자의 75.7%는 대기업 등 원하는 곳으로 취업이 어려우면 중소기업에 취업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중소기업에 들어가려고 마음을 먹더라도 관련 정보를 구하기 어려워 애를 먹는다.

대한상의 조사에 따르면 대학생들이 중소기업 취업을 생각할 때 가장 큰 애로사항은 ‘정보 부족’(51.4%)이었다. 이어 ‘우량 중소기업을 판단하기 어렵다’(42.3%), ‘중소기업 정보를 신뢰할 수 없다’(6.4%) 등으로 나타났다. 대학생들이 알고 싶어하는 기업정보와 중소기업이 제공하는 채용정보 사이에 격차가 그만큼 크다는 얘기다.

대학생들은 필요로 하는 정보는 급여수준(79.3%·복수응답), 회사 미래비전(66%), 복리후생제도(56.7%), 재무 및 회사정보(45%) 순이었다.

반면 중소기업이 제공하는 정보는 복리후생제도(75.7%), 재무 정보(62.3%), 업무내용(60.3%) 등이었고 급여수준(46%)이나 회사미래비전(41.7%)을 공개하는 기업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이 같은 정보 미스매치로 대학생들이 졸업 후 일자리를 얻는 데 걸리는 시간이 길 수밖에 없다. 취업포털 사이트 잡코리아가 작년 취업에 성공한 4년제 대학졸업자 87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졸업 후 정규직 입사까지 평균 10.3개월이 소요됐다.

변지성 잡코리아 취업지원팀장은 “대기업 못지않은 우량 중소기업에 갈 수 있는 인재들이 수시채용으로 바뀐 대기업 지원에 일년 내내 매달리는 사회적 낭비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며 “이런 인력들을 중소기업으로 유도할 수 있는 물꼬를 트는 데 정부 정책의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직자 맞춤형 정보제공 필요

전문가들은 정보 미스매치를 풀기 위해선 중소기업의 정보 제공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규용 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각 지방자치단체와 업종별 중기 단체 간 네트워크를 통해 취업 정보를 체계적으로 제공하는 게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정중훈 한국외대 경력개발센터 팀장은 “중소기업청 등 정부가 지정하는 우수 중소기업의 평가기준을 명확히 공개하고 기업 리스트와 정보를 구직자들이 찾아보고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