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동독 외교문서 4건 공개.."김정일 20년간 세습 준비"

북한이 1970년대 초반부터 김일성 주석의 유고(有故)에 대비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세습을 준비했다는 내용이 담긴 외교문서가 미국에서 공개됐다.

25일(현지시간) 미 싱크탱크 우드로윌슨센터(WWC)가 공개한 옛 동독의 외교문서에 따르면 1974년 11월 12일 평양 주재 동독 대사는 본국 외교부에 보낸 전문에서 김 위원장의 후계체제가 사실상 확정됐다고 보고했다.

전문은 당시 남한으로 탈북한 북한 고위급 인사가 `라디오서울' 방송을 통해 김 주석의 가족 등에 대해 언급했다고 전한 뒤 "이는 우리가 북한측의 이너서클(핵심층)을 통해 파악한 내용과 대체로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김일성의 아들 김정일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는 당 회의가 북한 전역에서 열렸다"며 "이는 `중대 사태(something grave)'가 김일성에게 일어날 경우를 대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김정일의 대형 사진이 통일이나 사회주의 건설에 관한 그의 발언과 함께 사무실에 처음 등장하기 시작했고, 동시에 김일성의 첫 부인이자 김정일의 생모(김정숙)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전문은 "이는 아주 은밀하고 민감한 이슈로, 북측 동무들은 이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있다"면서 "오랜기간 민감하게 관찰해야 할 문제"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김정일 위원장은 1974년 2월 노동당 정치위원에 오르면서 사실상 후계자로 확정됐으나 북한은 이를 철저히 비밀에 부쳤으며, 이후 1980년 10월 당 정치국 상무위원에 오르면서 후계자로 공식 등장했었다.

동독 대사는 이듬해 4월 14일 또다시 본국에 외교전문을 보내 이른바 `3대 혁명 소조 운동'을 전하며 "처음으로 김일성 가족의 연대기에서 첫 부인과 장남이 강하게 부각됐다"고 보고했다.

또 기존의 김일성 사진과 같이 김정일이 주민들과 대화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과 그림이 등장했다면서 "이는 김일성의 장남이 체계적으로 후계자로 길러지고 있다는 우리의 가설을 확인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1975년 12월 12일 전문은 "북한이 최근 `3대혁명 붉은기 쟁취운동'에 주력하고 있다"고 소개한 뒤 "`당중앙'(김일성의 아들)이 이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동독 대사는 1977년 7월 4일 전문에서는 "`당중앙'에 대한 언급이 줄어들고 있다는 인상을 받고 있다"면서 "외국인들이 접근할 수 있는 지역에는 더이상 김정일의 구호를 찾아볼 수 없고, 초상화의 수도 줄어들었다"고 전했다.

냉전시대 북한 비밀문건을 발굴해 영어로 데이터베이스화하는 `북한 국제문서 연구사업(NKIDP)'을 진행하고 있는 WWC는 최근 김 위원장 사망 보도 후 4건의 외교전문을 공개하면서 "김정일의 권력 승계 과정은 20년 넘게 진행됐다"면서 "이는 2~3년에 불과한 김정은과 비교된다"고 지적했다.

(워싱턴연합뉴스) 이승관 특파원 human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