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패드로 옮겨간 도박게임… '바다이야기' 다시 떴다
22일 오전 10시, 충청북도 청주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7층 건물 A빌딩 2층. 언뜻 보면 일반 카페처럼 보이는 이곳에서는 평일 오전임에도 불구하고 40~50대 남성 20여명이 소파에 앉아 뭔가에 열중하고 있다. 탁자마다 혼자앉아 태블릿PC인 아이패드로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일반 오락이 아니라 몇 해 전 사회문제화됐던 사행성 게임 ‘바다이야기’와 유사했다. 일명 ‘오션파라다이스’(바다이야기 류의 릴 게임). 장시간 게임을 한 듯 이들 앞에 놓인 재떨이에는 담배꽁초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안락한 소파를 갖춘 실내는 카페 같이 꾸며져 있었다. 지하의 어둡고 눅눅한 분위기의 과거 ‘바다이야기’ 게임장과는 딴판이었다.

무직이라고 밝힌 40대 중반의 이모씨는 “지난 16일부터 하루만 쉬고 매일 출근하다시피했다”며 “둘째날 고래를 잡아서 70만원가량을 땄다”고 자랑했다. 고래는 게임 화면이 어두워지고 고요한 바다와 함께 나타나 대박이 터질 확률이 높다는 신호다. 아이패드 3대를 한꺼번에 켜놓고 게임을 하던 최모씨는 “아이패드라고 해서 화면이 작고 눈이 아플 줄 알았는데 그래픽도 깨끗하고 사운드도 좋다”며 “일반 전자게임기보다 아이패드는 크기도 작고 간편해 여러 대를 한 번에 사용할수 있다는 게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장문옥 서울지방청 생활질서과 경위는 “외부에서 봐선 불법게임장인지 전혀 알 수 없는 카페형 아이패드방이 전국적으로 급격히 늘고 있다”고 말했다.

◆초기투자부담 없어 전국 가맹점 모집

사행성 게임의 대명사로 철퇴를 맞았던 ‘바다이야기’가 태블릿PC인 아이패드에서 다시 부활하고 있다. 이른바 ‘아이패드방’이다. 아이패드방은 최근까지 보름 새 서울에서만 3곳이 적발됐고 업주와 환전업자 등 7명이 검거됐다. 전라남도 목포와 경기도 안산, 충청남도 보령 등지에서도 아이패드방 업주가 구속되는 등 전국 각지에서 피해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아이패드방’은 태블릿PC인 아이패드를 손님에게 대여해주고 여기에 깔린 사행성 도박게임 앱을 해외 계정에서 손님이 직접 다운받아 이용할 수 있는 곳이다. 커피나 음료, 라면 등도 제공해주고 20대들이 주로 이용하는 보드 게임방이나 카페의 분위기로 위장한다. 하지만 대부분 아이패드방에선 바다이야기 류의 릴게임이나 스크린 경마 등 사행성 게임을 즐긴다. 아이패드방은 태블릿PC를 2년 약정으로 대여를 해놓거나 한 대에 70~80만원에 구입해 손님들에게 시간단위당 대여해준다. 다른 게임장의 게임기나 컴퓨터가 한 대당 100만~300만원인 것과 비교하면 게임방 운영자로서는 초기 투자비용이 훨씬 적게 든다.

이용방법도 간단하다. 아이패드방 방문자는 시간당 5000원을 내고 아이패드 한 대를 빌린 뒤 돈을 내고 필요한 만큼 포인트를 산 뒤 앱을 다운받아 게임을 시작한다. 시작버튼을 누를 때마다 100점(100원)씩 소진된다. ‘센터’의 그림 4개가 일치하면 보통 2만점, 3개이면 500점이 적립되는 등 과거 바다이야기와 비슷한 게임 방식이다. 게임이 끝나면 포인트에 따라 환전도 가능하다. 청주 게임방의 바로 옆 건물에는 게임 포인트를 돈으로 환전해주는 환전방도 마련돼 있다.

인기가 늘어나자 가맹점을 모집하는 업주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바다이야기 게임물 등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G전자의 K씨는 “아이패드는 게임기나 데스크톱과는 달리 쉽게 운반할 수 있어 경찰에 압수당할 위험이 적다”며 “또 불법 게임을 손님에게 직접 제공해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패드만 대여해 주는 방식이어서 업주가 경찰에 적발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직접 앱다운받아 게임…단속 어려워

아이패드방은 국내 온라인 게임물의 심의 기준이 대폭 강화됐지만 해외 앱스토어를 이용, 게임물을 설치하기 때문에 경찰 등 단속 기관의 감시를 피할 수 있다. 이번에 적발된 오션파라다이스와 체리마스터 등은 게임물등급위원회에서 등급분류가 거부돼 국내에선 이용할 수 없는 게임이다. 한효민 게임물등급위원회 불법게임물 감시팀장은 “아이패드의 앱은 기존과는 다른 게임물 유통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단속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아이패드방은 사행성 게임물을 직접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업주가 처벌되지도 않는다. 기기(아이패드) 대여만 하고 손님이 직접 게임을 설치해 이용하는 방식이다. 업주는 경찰에 적발되어도 아이패드만 대여해준 것뿐이라고 둘러대면 그만이다.

게임장 손님도 처벌이 쉽지 않다.2006년 바다이야기 파문 이후 정부는 ‘게임산업진흥법’을 제정, 사행성 게임장을 등록제에서 허가제로 바꿨다. 문제는 새로운 법에 이용자 처벌 조항이 없다는 점이다. 이전에는 ‘음반·비디오물 및 게임물 법’에 따라 불법 사행성게임을 하면 업주는 도박개장죄, 손님은 도박죄로 처벌됐다.

문화체육관광부 게임콘텐츠산업과 관계자는 “입법 당시 바다이야기 류의 사행성 게임은 게임물로 보지 않아 이용자들을 처벌할 근거가 없다”며 “법에 허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시인했다.

취재 결과 실제 적발된 대부분의 아이패드방이 관할 세무서에 PC임대업으로 사업자 등록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이 아이패드방의 숫자나 소재를 정확히 파악하기 힘든 이유다. 한 팀장은 “이용자들이 해외 계정을 통해 다운받아 게임을 하는데 업주들에게 책임을 묻기도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경찰, 대대적 단속나서

아이패드방이 급속도로 늘어나자 서울지방청은 연말까지 100여명으로 구성된 특별단속 전담팀을 배치, 대대적인 단속활동에 돌입했다.

서울 중랑경찰서 등 서울 11개의 경찰서와 서울 지방청은 상설 단속반까지 꾸려가며 사행성 게임이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모든 아이패드에 똑같은 사행성 게임이 설치돼 있고 금전 거래를 한 흔적이 잡히면 얼마든지 현행법 상으로 처리할 수 있다”며 “가려내기가 힘들 뿐 아이패드방이 법망에 걸리지 않는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다른 경찰관계자는 “게임법은 상품권 등 현금화 가능한 모든 수단(보관증 제외)을 ‘사행성을 조장한다’며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돈을 거래한 흔적이 발견되면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라 5년 이하 징역, 5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

■ 바다이야기

사행성 게임의 대명사격인 바다이야기는 슬롯머신(빠찡꼬)처럼 돌아가는 그림을 맞히면 점수를 얻는 릴(reel) 게임의 일종이다. 1만원을 투입하면 1만점이 쌓이고 시작 버튼을 누를 때마다 100점(100원)씩 소진된다. 버튼을 누르면 하단 화면의 문어와 조개 등 바다생물 캐릭터가 돌아가다 일제히 멈추는 형식의 게임이다. 정부는 2006년 피해자가 속출하고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자 불법으로 규정하고 단속을 강화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