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중국이 수출하는 가장 큰 무기는 '시장 권위주의'
‘미국은 ‘채무의 덫’에 걸려 있다. 미국에 금융위기가 닥치자 중국이 미·중 관계의 조건을 결정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경제 분야에서의 지속적인 협조를 조건으로 인권과 티베트 문제를 비롯한 다양한 사안과 관련해 미국의 발언권이 약해졌다.’

언제부터인가 신문이나 방송에서 ‘미국이 중국의 인권이나 티베트 문제를 지적했다’는 뉴스가 사라졌다. 《베이징 컨센서스》도 워싱턴에서 베이징으로 서서히 옮겨지고 있는 세계 권력 중심의 이동을 폭넓게 다루고 있다. 미국인인 저자는 중국이 수출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라는 ‘시장 권위주의’, 즉 자본주의의 길을 가면서 독재체제를 유지하도록 해주는 새로운 개념에 주목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사유재산을 인정하되 혼합적인 소유구조를 채택하고 정부의 폭넓은 개입을 특징으로 하는 이른바 ‘베이징 컨센서스’는 1990년대 미국이 제3세계 국가들의 경제발전 모델로 제시한 ‘워싱턴 컨센서스’에 대비되는 개념이다. 이를 두고 학계에서는 ‘새로운 대안’이라는 주장과 ‘결국 미국식으로 수렴해가는 과정’이라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지만, 책의 행간에는 전자에 대한 저자의 우려가 곳곳에 묻어난다.

베이징의 물결이 어떻게 워싱턴을 잠식하고 있는지 모두 일곱 개의 고리로 엮어 놓았다. 각각의 고리는 중국의 부상과 커지는 역할, 워싱턴 컨센서스의 실패와 미국적 가치의 매력 감소라는 주제가 연결돼 있다.

1·2장에서는 제3세계 국가들에 시장 권위주의가 자유민주주의보다 더 매력적인 이유와 이 과정에서 미국의 안일한 판단을, 3·4장에선 아프리카·동남아시아에 확장되고 있는 차이나파워의 근거를 다룬다. 독재국가인 짐바브웨 이야기는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대통령 무가베의 처리를 놓고 유엔 결의안을 채택하려 할 때 중국은 안전보장이사회의 힘을 빌려 브레이크를 걸었다. 저자는 무기 거래와 하드웨어 수출이라는 중국과 아프리카 독재자의 뒷거래가 있었다고 지적한다.

중국의 ‘성장 함정’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성장을 멈출 수가 없는, 그래서 인권이나 자유의 가치를 무시함으로써 얻는 경제적 이득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베이징 컨센서스를 유지하는 동력이라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