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대마불사' 美 은행의 배짱…정부는 왜 속수무책 당했나
2008년,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는 아직 진행형이다. 유럽의 재정위기 해법찾기는 지지부진하고, 월가 금융자본의 탐욕에 반발한 ‘점령 시위’는 여운이 짙게 남아 있다. 도대체 왜 이런 일들이 벌어졌을까. 자본주의 심장이라는 미국 한복판에서 시스템 붕괴를 우려해야 했던 까닭은 무엇일까. 그 원인을 서로 다른 각도에서 파헤친 책 두 권이 나왔다. 《위험한 은행》과 《금융내전》이다.

[책마을] '대마불사' 美 은행의 배짱…정부는 왜 속수무책 당했나
《위험한 은행》은 금융자본의 ‘이기심’에서 위기의 원인을 찾는다. 저자 사이먼 존슨 매사추세츠공대(MIT) 경영대학원 교수와 곽유신 코네티컷주립대 교수는 미국 금융의 역사를 민주주의와의 대결이라는 맥락에서 거시적으로 설명한다.

저자들은 은행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며 유리한 사업환경을 조성해온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은행의 역사는 곧 규제를 철폐하고 대형화를 꾀하면서 유리한 이데올로기를 구축하는 것이었다고 설명한다. 금융은 좋은 것이고, 규제받지 않는 금융은 더 좋은 것이며, 금융이 하는 대로 내버려두는 게 미국에도 좋은 것이라는 이데올로기 말이다.

은행들의 무기는 돈과 사람이다. 2009년 10월에도 1537명이나 되는 로비스트가 금융기관을 대표했다. 소비자그룹을 포함, 은행에 대한 강력한 규제를 찬성하는 쪽의 로비스트보다 25배나 많았다. 그해 9월까지 쓴 로비 자금도 3억4400만달러에 달했다. 사람은 두말할 것도 없다. 월가 출신 베테랑들이 정부 조직 곳곳에 포진해 왔다. 은행과 정부가 대결할 때면 은행이 모든 카드를 쥐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은행들은 덩치를 불려 대마불사의 배짱을 부리는 지경이 됐다. 파산할 형편이어도 정부가 구제해줄 수밖에 없으니 어떤 위험도 기꺼이 감수하는 데까지 이르렀다는 얘기다.

저자들은 대형 은행들이 호황기에는 이윤을 불리고 불황기에는 손실을 국민에게 전가하는 행태를 보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초대형 은행을 작은 은행으로 개편해야 한다”며 조금은 급진적인 해결 방안을 내놓는다. “대마불사는 은행 경쟁구조는 물론 경제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며 “전체 경제를 인질로 잡지 않고도 은행들이 파산할 수 있는 금융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책마을] '대마불사' 美 은행의 배짱…정부는 왜 속수무책 당했나
《금융내전》은 중국인 금융 전문가 시각으로 본 글로벌 금융위기 진단이다. 저자는 “실물경제 수요를 웃도는 금융업의 과도한 팽창은 필연적으로 재앙을 가져온다”면서 2008년 미국 금융위기 직전의 전 세계적 금융자산 팽창 현상을 짚는다.

저자에 따르면 2007년 말 현재 전 세계 주식 시가총액은 62조7000억달러, 채권 잔액은 78조9000억달러다. 세계 1000대 은행의 총 자산은 96조4000억달러, 금융파생상품의 명목가치는 674조달러다. 이를 모두 더하면 전 세계 금융자산의 명목가치는 실물경제의 16.4배에 이른다. 1998년 이 수치는 6.2배에 불과했다. 저자는 “실물경제가 15~16배에 달하는 금융업의 지원을 꼭 필요로 할까 하는 의문이 든다”며 “그 대답은 노(No)”라고 답한다.

이처럼 불어난 금융자산은 자원 분야에 쏠렸다. 20세기 100년간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은 18배 불었다. 같은 기간 석유·철강·구리의 연간 소비량은 각각 170배, 29배, 27배로 뛰었다. 자원 소비가 실물산업 발전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늘었고, 자원금융 또한 실물금융을 넘어서 전체 금융자산의 핵심이 됐다.

저자는 이 자원금융 버블이 전체 자본시장 버블을 촉발시켰다고 말한다. 이로 인한 원유, 금속 등 자원가격 폭등은 제조업과 서비스업 수익 감소와 개인 소득의 급격한 감소로 이어졌다. 결국 월스트리트의 부추김대로 주택가격이 오르길 기다리던 서브프라임 대출자들이 직격탄을 맞았고, 이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았다는 게 저자의 진단이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