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모호한 정책 만드는 여성부
"(셧다운제에) 일부 부족한 대목이 있는 건 인정합니다. 다만 청소년의 게임 중독을 예방하고자 하는 법 도입 취지를 이해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여성가족부 관계자)

16세 미만 청소년들의 심야시간(오전0~6시) 온라인 게임 이용을 차단하는 '셧다운제'가 지난 20일부터 시행됐지만 주무부처인 여성부와 게임업계 간에는 새 제도 시행 후에도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법 시행 전부터 불거졌던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논란의 핵심은 정부가 미국 게임업체인 블리자드사의 인기 온라인 게임 스타크래프트1,디아블로 등에 대해선 셧다운제 적용을 유예키로 한 것이다. 국내 게임업체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주장이 여기서 비롯됐다.

여성부 관계자는 "이들 게임도 인터넷을 통해 이뤄지지만 개인정보를 수집하지 않고,추가 비용도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셧다운제를 적용하기 어렵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국내 게임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법 적용 기준을 모호하게 만들면서 시빗거리를 남기고 국내 게임업체만 피해를 본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여성부가 만든 모호한 법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8월29일 발표한 청소년 유해음반 심의제도 개선방안도 뒷말을 많이 남겼다. 이 개선방안은 여성부 산하 청소년보호위원회가 잇따라 대중가요에 청소년 유해매체물 판정을 내리면서 이를 비판하는 여론이 거세지자 뒤늦게 나온 것이었다. 당시 여성부는 '직접적 · 노골적으로 술과 담배의 이용을 권장하는 경우'에 한정해 유해음반으로 판정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직접적 · 노골적'이란 게 구체적으로 무엇인지에 대해선 전혀 언급이 없었다. 기준을 오히려 더 모호하게 만들어 버린 셈이다.

여성부 관계자는 "유해음반심의제나 셧다운제 모두 청소년들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만든 법"이라며 "(언론에서) 법의 취지는 외면한 채 너무 세세한 사항들만 비판하는 것 아니냐"고 항변했다. 청소년 정책담당부서로서 여성부의 고충은 이해할 만하다. 청소년 유해음반을 심의하고 청소년들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온라인 게임을 어느 정도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다만 이런 민감한 법을 만들 때는 모호한 기준이 없도록 해야 한다. 정책 취지가 아무리 좋더라도 적용 기준이 모호하거나 실효성에 문제가 있는 법은 불필요한 규제로 전락할 수 있다.

강경민 지식사회부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