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PC 망가뜨리는 보안프로그램
"갑자기 컴퓨터가 재부팅되고 눈에 띄게 느려졌어요. 문제가 되는 프로그램을 찾아 삭제했더니 거짓말처럼 컴퓨터가 정상으로 돌아오더군요. "

최근 지인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여기서 말하는 프로그램은 악성코드나 해킹프로그램이 아니다. 인터넷 뱅킹이나 온라인 결제를 하기 위해 설치해야만 하는 보안 프로그램이 문제의 원인이었다.

국내 웹사이트에서 금융거래를 하기 위해선 몇 가지 프로그램을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방화벽과 안티바이러스,키보드 보안 프로그램 등이 대상이다. 하지만 이 같은 프로그램 때문에 컴퓨터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피해를 겪는 사용자가 많다. 웹사이트 접속을 하지 않아도 컴퓨터 리소스를 차지해 작동이 느려지거나,심지어 컴퓨터가 멈추기도 한다. 각각의 사이트마다 비슷한 프로그램을 강제로 설치하도록 하고 있어 이들끼리 충돌하는 경우도 잦다.

국내 컴퓨터 사용자들 사이에서 국내 보안프로그램들은 불신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최근 한 국내 보안업체가 금융거래 보안 솔루션을 미국 대형 은행에 수출한다고 발표했지만,인터넷 게시판에선 "국제적인 망신이 될까 걱정"이라는 등의 비아냥이 넘쳐났다.

이 같은 반응의 원인을 보안업체에만 돌릴 것은 아니란 지적도 있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망법) 시행령 15조5항은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 등은 개인정보처리시스템 및 개인정보취급자가 개인정보 처리에 이용하는 정보기기에 백신소프트웨어를 설치해야 하며,이를 주기적으로 갱신 · 점검하여야 한다"며 보안프로그램을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하고 있다. 기업들은 보안프로그램을 설치하는 것만으로 해킹이나 개인정보침해 등 사고의 책임을 상당 부분 피할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안전하고 성능이 뛰어난 보안프로그램에 투자하기보단 가격이 싼 프로그램을 선호한다. 한 보안업체 관계자는 "기업들이 낮은 가격을 최우선 순위로 두면서 안정성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고 토로했다.

애꿎은 사용자들만 피해를 보고 있는 셈이다. 보안 프로그램의 질적 개선과 함께 기업들의 인식 전환이 필요한 이유다. 보안프로그램이 컴퓨터를 망가뜨리는 현실은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승우 IT모바일부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