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유아들의 생명 구하기 위해 필요”

“아기 버릴 수 있는 환경 만들어줘선 안돼”


‘베이비 박스’를 둘러싼 논란이 한창이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아기를 키울 수 없는 사람이 남몰래 아기를 두고 갈 수 있도록 만든 장치가 베이비 박스다.

2009년 서울 관악구의 한 교회에 처음이자 유일하게 이것이 설치된 후 베이비 박스를 그대로 둬야 하는지에 대해 끊임없는 찬반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이 박스는 교회 한 목사가 교회 앞 대문에 버려진 신생아가 저체온증으로 숨질 뻔한 일을 겪고 나서 설치했다.

교회 벽 일부를 개조해 문을 열 수 있는 보관함처럼 만들어 일정한 난방도 되고 아기가 들어가면 수십초 후 교회 내에 경고벨이 울려 오랜 시간 아이가 방치되는 것을 막을 수 있게끔 고안됐다.

찬성

베이비 박스를 설치한 목사는 “저체온증 아이를 보듬고 들어오면서 잘못하면 큰일나겠다는 생각에 베이비 박스를 만들게 됐다”고 말한다.

베이비 박스는 일부 외국에서 설치해 운영되고 있지만 국내에는 이 교회에 설치된 것이 유일하다.

어린 생명이 혹시라도 생명의 위협을 받지 않도록 한다는 취지에는 많은 사람이 공감을 하고 있다.

하지만 베이비 박스가 오히려 아기 유기를 부추긴다며 이를 반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베이비 박스를 둘러싼 찬반 논란을 알아본다.

베이비 박스를 설치한 이종락 목사는 이 시설의 철거를 주장하기 전에 양육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안심하고 아기를 맡길 수 있는 복지환경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실적으로 미혼모 등이 아이를 버리다시피 하고 가버리면 갓난아이의 생명이 커다란 위협을 받는데 이를 그대로 방치하는 것이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이라는 게 이 목사의 지적이다.

모든 생명이 똑같이 중요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결코 아이들을 지금처럼 위험하게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목사는 “베이비 박스가 없는 세상이 오기를 가장 바라는 사람은 나”라면서도 “길바닥에 버려진 아기들이 가쁜 숨을 몰아쉬는 것을 보고만 있으라는 소리냐”고 반문했다.

독일의 한 산부인과에는 ‘사랑의 바구니’, 일본의 한 병원에는 ‘신생아 포스트’, 체코의 가톨릭병원에는 ‘베이비 박스’ 등 아이를 기르지 못하는 사람들의 아이를 비교적 안전하게 받아줄 수 있는 시설이 있는데 유독 우리는 이를 백안시하고 제도화하지 못하는 것은 문제라며 찬성하는 견해도 있다.

일본에서도 비슷한 문제로 찬반 의견을 조사했더니 찬성이 66%로 반대 34%보다 많았다는 것도 비록 다른 나라의 경우지만 부분적으로 참고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네티즌 중에도 “아기를 맡길 수 있는 시설이 현실적으로 부족하고 있다 하더라도 부모 입장에서 신분 노출을 꺼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 베이비 박스는 아기의 생명과 직결될 수도 있다”며 추운 겨울 날씨에 연약한 아기들이 동사할 수 있는 만큼 필요하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반대

보건복지부와 관악구청은 베이비 박스가 아동 유기를 조장할 수 있다며 철거를 요구하고 있다.

부모의 죄책감을 덜어줄 우려가 있다는 게 철거를 요구한 이유다.

베이비 박스가 설치된 후 이곳에서 발견된 아기들만 해도 지금까지 26명에 달하는데 이 박스가 없었다면 이 중 일부는 부모가 그대로 길렀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관악구는 특히 미인가 시설인 베이비 박스를 통해 임의로 아이를 돌보는 것은 불법인 만큼 베이비 박스를 없애달라고 교회 측에 요구하고 있다.

관악구청 관계자는 “복지부에서 129 콜센터를 운영하고 있어 이쪽에 전화를 해 아기를 기를 수 없을 경우 상담할 수도 있는 등 이미 시스템이 마련돼 있는데 베이비 박스 같은 것이 있으면 더 쉽게 아기를 포기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일부 시민단체에서도 “아기를 맡길 수 있는 환경이 부족하다고 해서 유기할 수 있는 환경까지 만들어주면 안 된다”며 이 목사를 비난하고 있다.

네티즌 중에도 “능력 없는 미혼모나 미성년자들도 불장난을 해 아이를 갖더라도 저 박스에 넣어두면 될 것이라는 생각에 아기 유기를 더 조장할 수 있다”며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다.

이 목사의 의도는 좋지만 방법이 바람직하지 않은 것인 만큼 이런 식으로 베이비 박스 운영을 계속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견해도 있다.

많은 고민 없이 아이를 버리는 일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고 아기들이 자기의 근원이나 출생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이 버려지고 향후에도 이를 알 가능성이 원천적으로 차단된다는 점도 반대론자들이 내세우는 이유다.

생각하기

베이비 박스 문제는 낙태나 피임을 둘러싼 찬반만큼이나 복잡하고 결론이 쉽지 않은 문제다.

사람의 생명이 걸린 문제인 만큼 그 누구도 섣부른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주제다.

다만 베이비 박스 폐지를 주장하는 측이 이 박스가 아기 유기를 더 조장한다고 주장하는 부분은 큰 설득력이 없지 않나 생각된다.

사실 아기를 포기하기로 마음먹은 부모라면 베이비 박스가 있든 없든 관계없이 어디에라도 아기를 유기할 가능성이 높다. 베이비 박스가 있다고 해서 미혼모들이 더 아기를 낳지는 않을 것이며 젊은이들이 더 문란해질 것이라고 판단하기도 어렵다.

이 문제와 관련해 집중해야 할 부분은 이미 아기가 태어났고 경제적 형편 때문이든, 원치 않는 임신이었든 간에 부모가 아기를 포기하려고 결정을 내린 상태라는 점이다.

이 경우 최선은 아기가 가능한 한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며 그런 환경을 마련하는 것을 무조건 비난하기는 어렵다.

물론 최선은 이런 일이 가능한 한 생기지 않도록 사회복지 시스템을 철저하게 구축하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말이 쉬워 복지 시스템이지 유기된 아기를 맡아 기를 사회복지 시스템이 완벽하게 갖춰진다면 이 역시 아기 유기를 부추긴다는 비난을 또 받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복지시스템 구축보다 더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는 생명과 성에 대해 젊은이들이 올바른 사고와 책임의식을 갖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결국 교육이 담당해야 할 부분이다.

올해 상반기 경찰에 신고된 버려진 영아는 모두 65명으로 이 가운데 10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김선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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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닷컴 11월16일자 보도기사

‘베이비 박스’에 대한 논란이 거세다. 서울 관악구에 위치한 한 교회에 설치된 ‘베이비 박스’가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는 버려진 아기가 동사하는 것을 막도록 설치된 것으로 전국에서 유일하다.

2009년 교회의 목사가 설치한 베이비 박스에는 “불가피하게 아이를 돌보지 못할 처지에 있는 미혼모의 아기와 장애를 갖고 태어난 아기. 버리지 말고 여기에 넣어주세요”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실제로 ‘베이비 박스’에는 26명의 신생아들이 버려졌으며 아기들은 장애를 갖고 있거나 미혼모의 편지와 함께 발견됐다.

추운 날씨에 버려진 아기들은 베이비 박스가 아니었으면 저체온증으로 숨질 뻔했던 것.

그러나 보건복지부와 관악구청은 미인가 시설에서 아이를 돌보는 것은 불법임으로 베이비 박스를 없애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베이비 박스의 존재도 네티즌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되고 있다. 네티즌은 “아이가 죽는 걸 방지해주는 장치다.

나라가 해줄 일을 개인이 하고 있는데 상은 못줄망정 없애달라고 하나?” “베이비 박스가 있으면 아동유기가 더 조장된다.

나라에 맡기는 것이 옳다”며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