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외부 기관 랭킹은 '빛 좋은 개살구'…내부 평가가 진짜 성적표
[책마을] 외부 기관 랭킹은 '빛 좋은 개살구'…내부 평가가 진짜 성적표
평판이 좋다면 이미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다. 미래 성공을 담보로 받은 것과도 같다. 개인이나 기업이나 마찬가지다. 모두 무슨무슨 랭킹에 이름을 올리려고 기를 쓰는 세상 아닌가. 포천,포브스 등 미국 경제잡지를 비롯한 국내외 기관들이 매년 선정해 발표하는 랭킹들 말이다.

로사 전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 교수는 "그런 쓸데없는 짓 하지 마라"고 주장한다. "랭킹에 근거한 평판은 아무런 전략적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새 책 《평판을 경영하라》에서다.

전 교수는 외부 기관에서 부여하는 랭킹의 허점을 얘기하기 위해 엔론의 사례를 든다. 엔론은 2001년 파산한 미국 최대 에너지 기업이다. 엔론은 파산 당해연도에 더할 수 없이 좋은 평판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포천 선정 '500대 기업''6년 연속 가장 혁신적인 미국 기업''최고의 직장 100''가장 존경받는 글로벌 기업' 등이다. 그러나 그 끝은 모두가 아는 대로다.

전 교수는 "대부분의 외부 평가는 재무성과만 강조하기 때문에 겉모습과 속사정이 다른 모순이 생긴다"고 말한다. 그렇게 평가된 기업들은 위기에 처했을 때 소비자에게 외면받기 일쑤며 엔론처럼 한순간에 무너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대신 평판을 전략적으로 경영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고객은 물론 직원과 파트너 기업 등 다양한 이해 관계자들의 다각적 평판을 경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내부 직원들 관점에서의 평판 관리가 기본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기업도 사람처럼 성격이 있다는 가정 아래,이해 관계자들의 해당 기업 평판 측정에 필요한 5개의 '성격 키워드'를 만들었다. 선(善),흥(興),능(能),격(格),권(權)이다. 각각 여러 개의 하위 키워드로 나뉜 이들 성격 키워드를 활용해 기업이나 조직의 평판을 다양한 각도에서 측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성격 측면의 평판을 키우거나 줄임으로써 위기 상황을 반전시킬 열쇠를 찾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사기업과 비영리 단체,영국 노동당의 선거전략과 내년 한국 대선의 승리전략에 대한 분석 결과도 간단하게 제시한다.

전 교수는 '진실함의 선'의 예로 영국 막스앤스펜서의 일화를 든다. 막스앤스펜서는 34개국에 718개 체인점을 운영하는 글로벌 기업인데 우수한 품질로 평판이 높다.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는 즉석식품으로도 유명하다. 이 즉석식품에는 뚜껑 비닐에 구멍을 내고 전자레인지에 넣어 돌리라는 조리방법이 쓰여 있다. 어느날 한 소비자가 즉석식품의 맛과 질감에 실망했다며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었는데 알고 보니 불평을 쏟아내는 게 아니라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물어보기 위한 전화였던 것이란 설명이다. 그는 "진실함의 선은 정직성,신뢰성,책임성 세 가지로 이뤄진다"며 "하나가 강하면 나머지도 덩달아 강하게 나타나는 특성이 있다"고 이 사례를 설명한다.

전 교수는 내부 평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외부인이 조직을 바라보는 평판보다 내부 직원이 바라보는 평판을 더 중요하게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직원이 싫어하는 회사는 소비자도 외면하게 돼 있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그는 "내외부 평판의 차이가 작을 때는 특별한 매출 변화가 없었던 반면 내부 평판이 외부 평판에 비해 현저히 높을 때는 매출 성장 폭이 매우 컸다"고 설명한다. 반면 외부 평판이 내부 평판에 비해 높은 경우 매출이 꾸준히 하락했다는 것.직원이 회사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과 느낌이 태도로 연결되고,그것이 고스란히 고객에게 전달된다는 얘기다. 결국 직원들이 회사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외부 평판과의 차이는 없는지 등을 분석하고 진단하는 것에서 혁신의 기회를 찾는 게 정답이란 것이다.

전 교수는 내년 대선 이야기도 내비친다. 그는 "이슈보다 리더의 이미지와 평판이 더 중요하다"며 "리더의 평판에 따라 승패가 갈릴 것"이라고 말한다. 특히 근면하고 성실하며 추진력 있는 '능'이 아니라 개혁과 변화가 관건인 '흥',국민과의 소통과 서민을 위한 정치인 '선' 성격이 표심을 가르는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