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흐루시초프는 귀족 자제…명문 세력이 볼셰비키 주도"
1992년 11월3일.미국 대선에서 빌 클린턴이 대승을 거뒀다. 같은 달 30일엔 할리우드의 유명 프로듀서가 클린턴 부부를 초청해 파티를 열었다. 그 연회석엔 영화배우 로버트 와그너와 왕년의 '본드걸' 질 세인트 존도 참석해 주목받았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배우로만 알고 있던 이 두 사람은 제정시대 로마노프 일족의 열렬한 추종자였다. 클린턴은 이날 '작은 러시아'의 축복을 받은 것이다.

지난해 한국어로 출간된 《제1권력:자본,그들은 어떻게 역사를 소유해왔는가》를 통해 미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던 일본 재야운동가 히로세 다카시가 돌아왔다. 자본을 둘러싼 인맥 사슬로 세계 근현대사를 분석하는 그는 《제1권력 2:자본,그들은 어떻게 혁명을 삼켜버렸는가》를 통해 이번엔 러시아를 정조준하고 있다.

클린턴의 승리 축하연 이야기처럼 다소 황당하고 억지스러운 느낌도 있지만 '다음엔 무슨 얘기가 있을까'하는 호기심을 갖게 하기엔 충분하다. 저자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역사적 사실은 단지 결과이거나 철저하게 왜곡된 껍데기라고 주장한다.

"이 세상에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특히 러시아에서는 누구나 알고 있는 인물들이 암약하며 정치인들은 마치 체스 말처럼 움직인다. 로마노프가의 역사를 알면 뉴욕 런던 파리 도쿄의 증권거래소와 시베리아의 대자원이 직선으로 연결된다. "

책은 3부로 구성된다. 1부 주인공은 흐루시초프.저자는 도네츠 탄광 노동자 출신으로 알려진 그에 대해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그 근거로 1917년 10월 혁명을 피해 프랑스로 망명한 러시아 귀족들의 계보서를 들이대며 흐루시초프 또한 명문 귀족의 일원이라고 주장한다. 옛소련 최고 권력집단인 볼셰비키 정부 인사들도 흐루시초프와 뿌리가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2부에선 페레스트로이카의 큰 물결 속에서 모스크바 마피아와 재벌 간의 연결고리를 살피고,3부에선 러시아의 공식 국가문장인 '쌍두의 매'가 로마노프가의 문장이라는 설명과 함께 독자들에게 그 해석을 맡긴다. 옐친의 '금고지기'였던 현재 첼시의 구단주이자 석유재벌 아브라모비치 같은 울리가르히(신흥재벌)와 푸틴의 암투를 다루겠다는 후속작 《하나의 사슬》이 궁금해진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