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인터넷 '연결 과잉'이 금융위기 주범
[책마을] 인터넷 '연결 과잉'이 금융위기 주범
인구 30만명의 아이슬란드는 본래 어업 위주의 외딴 섬나라였다. 하지만 인터넷이 빠르게 보급되면서 금융업이 크게 성장했다. 은행들은 전 유럽을 대상으로 온라인 은행 영업을 펼쳤고 자금은 급속히 유입됐다. 금융업의 힘으로 2005년 1인당 국민소득은 세계 5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2006년 덴마크의 한 은행이 '아이슬란드의 대외채무가 국내총생산의 약 3배에 이른다'는 보고서를 발표하면서부터 아이슬란드의 은행들은 순식간에 무너지기 시작했다. 투자자들이 발을 빼자 통화가치는 폭락하고 국가 신용등급은 하락했다. 주식시장도 곤두박질쳤다. '유럽의 강소국' 아이슬란드는 2008년 금융위기로 몰락의 길을 걸었다. 아이슬란드 은행들이 국제적으로 '연결'되지 않고 국내에만 머물렀어도 국가부도 위기를 초래했을까.

《과잉 연결 시대》는 인터넷이 만들어낸 상호 연결성의 위험에 주목한 책이다. 저자인 윌리엄 데이비도우는 인텔의 수석 부사장을 지낸 실리콘밸리 1세대 인물.인터넷 시대를 가장 가까이에서 목격한 그는 과도하게 '연결된' 시대에 발생하는 각종 문제점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짚어낸다.

저자는 연결성 정도에 따른 사회의 모습을 △연결이전(underconnected) △상호연결(interconnected) △고도연결(highconnected) △연결과잉(overconnected) 상태로 구분하고,현재 세계는 연결과잉 상태라고 진단한다. 또 연결과잉 상태에서는 사회 각 주체들의 변화 속도가 너무 빨라 주변 환경이 변화 속도에 대처하지 못하는 문화지체 현상을 보인다고 지적한다. 이를 설명하는 개념은 '포지티브 피드백'.하나의 변화가 일어남으로써 또 다른 변화가 강화 · 증폭돼 원래보다 훨씬 큰 자극을 준다는 뜻이다. 결국 연결과잉은 포지티브 피드백의 수위를 높여 사소한 문제에도 그 부작용이 걷잡을 수 없는 결과를 불러일으킨다는 설명이다.

저자는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의 근본적 원인이 '연결과잉' 현상에 있다고 단언한다. 물론 저금리,규제 완화,과도한 탐욕 등의 원인이 있지만 인터넷이 위기를 확산시키는 촉매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다. 1929년 대공황 때 인터넷이 있었다면 시장은 더욱 깊은 수렁으로 떨어지고,세계 경제에도 훨씬 더 심각한 상처를 입혔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인터넷이 없었다면 아이슬란드가 금융강국이 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며 "그러나 재앙을 방지할 안전장치는 없었고,규제체계는 연결성의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고 말한다.

책에는 그리스 경제 위기,미국 스리마일 섬 원전 사고,허리케인 카트리나의 피해,인도네시아 발리 섬의 벼농사 문제 등의 사례도 등장한다. 저자는 "그리스의 내부 문제가 경제 위기를 키웠지만,과도한 신용부도스와프(CDS)는 그리스의 재앙에 기름을 끼얹었다"고 말한다. 연결과잉 상태에서 일부 투기꾼이 그리스에 대한 CDS를 구입하자 모두 비슷한 상품에 빠져들었고,빠르게 악화된 상황은 거대한 파장을 일으키며 전 세계 경제를 뒤흔들었다는 것이다.

연결과잉의 문제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을까. 대안은 그리 많지 않다. 상호 연결된 세상은 우리에게 많은 혜택을 안겨줬다. 비즈니스 효율을 높이고,경제 발전에도 큰 기여를 했다. 교통사고를 줄이자고 제한속도를 시속 30㎞로 정할 수는 없는 노릇.저자는 우선 연결과잉으로 인한 포지티브 피드백의 수위를 낮춰 사고와 전염 현상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포지티브 피드백은 사회적 진보를 가져오는 원동력이지만 지나칠 경우 재정적 전염,해킹,개인정보 유출,컴퓨터 바이러스,스팸메일 등 병폐를 낳을 수 있어서다.

저자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우리 자신의 발명품이 만들어 낸 환경에 뒤처지지 않게끔 적응해야만 한다"며 "이 새로운 환경은 기회로 넘쳐나지만 그것을 포착하느냐 아니면 거기에 볼모로 붙잡히느냐를 결정하는 건 온전히 우리의 몫"이라고 강조한다.

양준영 기자 tetr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