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창조한 문자 중 가장 우수하다고 평가되는 한글.그러나 매일매일 한글에 둘러싸여 사는 우리는 한글의 우수성에 뿌듯해하면서도 그 소중함을 놓칠 때가 많다. 한글날을 앞두고 한글의 우수성을 되새길 수 있는 책이 나란히 출간됐다.

《한글의 탄생》은 일본의 한국어학자인 노마 히데키 국제교양대 객원교수가 훈민정음의 창제 과정과 원리를 언어학적으로 설명한 책이다. 미술가로 활동하던 중 한글의 매력에 빠져 한국어학을 전공하게 된 저자가 한글의 특징과 탄생 과정을 상세하게 전한다.

그는 "한글의 구조를 보면 우리는 '음이 문자가 되는' 놀라운 시스템을 발견하게 된다"며 "한글을 본다는 일은 하나의 문자체계를 뛰어넘어 언어와 음과 문자를 둘러싼 보편적인 모습까지도 보는 일이 된다"고 말한다. 아울러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에 의해 이뤄진 한글의 탄생 과정을 언어학적으로 재연한다. 귓가에 들려오는 자연의 말소리로부터 음의 단위를 추출해 내고,이들을 각각 자모로 형상화해 설계해내는 과정도 흥미롭게 설명한다.

훈민정음 반대파인 최만리 등의 상소문에 담긴 의도를 풀어내고 세종대왕의 반론을 서술한 부분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저자는 최만리파의 사상을 단지 사대주의로 총괄해버리는 것은 너무나 성급하다고 지적한다. 이는 정치적인 측면만을 본 것이며 실상은 언어학적 · 문자론적인 '지(知)'의 지평에서 벌인 사상 투쟁이었다는 것이다.

한글은 사람들의 손에서 문장이 되고 텍스트가 됨으로써 단지 하나의 문자체계가 아니라 기존에 있던 '지(知)'를 뒤흔들어놓은 존재가 됐다. 저자는 "한글의 탄생,그것은 문자의 탄생이자 '지(知)'를 구성하는 원자(原子)의 탄생이기도 하고 새로운 미를 만들어내는 '게슈탈트(형태)'의 혁명이기도 하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일본에서 지난해 출간돼 3만부 이상 팔린 이 책은 한글을 모르는 일본인을 위해 쓴 인문서지만 한글을 모국어로 하고 있는 독자들에게도 흥미롭다. 한글의 서예법,컴퓨터에서 구현되는 글꼴 등 한글의 선과 형태에 관한 미적 아름다움을 파고들어간 부분도 눈길을 끈다.

《한글 고문서 연구》는 한글 고문서를 통해 조선 사람들의 삶을 엿본 책이다. 조선시대 여항의 소통 문자였던 한글 자료를 통해 그들의 내면세계는 물론 사람과 사람의 관계,그 속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생활의 이면을 살펴본다.

"요사이 아이들 데리고 어떻게 계신가. 기별을 몰라 걱정하네.대임이는 어제 생일에 무엇을 먼저 잡던고.기별 몰라서 더욱 잊지 못하여 하네.집안도 편하고 마을도 편하면 무슨 일로 혼자이라 와서 고생하며 그리워할고.요사이 봐서 열이렛날 사이 내려가고자 하니 마을 곧 편하거든 다닐 사람을 정하여 기별하소."

17세기 현풍 곽씨 곽주가 아내 하씨에게 보낸 한글 언간의 일부다. 곽주의 아들 대임이의 첫돌날 돌잡이 장면을 연상하며 쓴 내용이다. 이 언간에는 돌림병을 피하기 위해 다른 곳에 나와 집안일을 걱정하는 내용 등 17세기 사민층의 일상사가 잘 드러나 있다.

이 책은 한글 매매 명문과 한글 수표의 내용과 형식,청원이 있을 때 관아에 내는 소지와 발괄,상전이 하인에게 내리는 문서인 배자,재산의 상속과 분배를 기록한 문서인 분재기 등 자료 중심의 분석을 시도한 논문 20편과 디지털 시대 한글의 미래에 대한 논문 3편으로 꾸며졌다.

양준영 기자 tetr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