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이끌 발전 전략의 필요성은 나라를 가리지 않는다. 판이 뒤바뀌는 거대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칫 동력을 잃고 추락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어서다. 1980~1990년대는 '워싱턴 컨센서스'가 한국을 비롯한 세계의 발전 패러다임 역할을 했다.

그러나 거시경제의 안정,경제 자유화,공기업 민영화 등을 기본으로 한 워싱턴 컨센서스는 그 타당성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다. 엄격한 국가통제 경제발전에 집중하는 중국 모델의 '베이징 컨센서스' 또한 21세기 새 시대를 선도하기에는 부족하다는 평이다. 선진국 진입을 앞둔 한국의 발전 패러다임은 어떻게 짜야할까.

한반도선진화재단이 이 물음에 대한 생각을 책으로 엮었다. 《서울컨센서스》 두 권이다. 2009년 여름부터 1년여간 40명의 분야별 학자들이 모여 만들어낸 21세기 한국의 새로운 발전 패러다임이다. 1권에서는 한국이 선진국으로 가기 위한 지혜를 모았다. 2권은 후진국의 중진국화 발전모델로,한국의 발전경험을 정리했다. 특히 시장과 정부,금융,재정과 조세,산업정책으로 나눠 정리한 경제전략이 눈길을 끈다.

김종석 홍익대 교수는 시장과 정부 관계와 관련,"정부 실패는 시장 실패처럼 구조적인 문제"라며 "정부의 시장 개입을 축소하고 작은 정부를 지향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소득격차 확대 문제의 본질은 '격차'가 아니라 '빈곤의 확산과 고착'"이라며 "빈곤층에 보조금을 주는 것보다 경제적 기회를 확대하고 직업능력을 향상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또 "정부가 특정산업이나 기술을 선택해 미래를 예측하고 수익률 왜곡을 초래하는 지원을 하면 부작용이 더 클 것"이라며 "경쟁력 있는 기업들이 자유로이 경쟁할 수 있는 제도적 인프라를 제공하는 것을 기본임무로 삼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신인석 중앙대 교수는 금융산업과 관련,"향후 금융정책의 화두는 '개방'에서 '관리된 시장 간 통합'으로 전환돼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관리된 통합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이해가 일치하는 국민경제의 합의된 공조가 필요하다"며 아시아 국가와의 역내 협력 필요성을 강조한다.

또 "특정 금융상품이나 금융행위를 금지해 시스템 위험을 관리할 수 있다는 시각은 오류"라며 "헤지펀드의 금지는 국민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다만 헤지펀드를 허용하되 금융투자업자에 한정하고 공적감독을 강력히 할 필요는 있다고 조언한다.

이영 한양대 교수는 재정 및 조세 정책과 관련해 "발전에 따라 정부 규모를 소폭 증대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고용 없는 성장이 보편화되고 있다"며 "고용과 고용기회를 제고하는 방향으로 예산을 편성하고 집행하는 '고용인지예산제도'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특정산업 발전을 꾀하는 재정정책은 지양해야 한다"며 산업 또는 분야 간 차별적 재정지원과 규제 폐지를 강조한다. 서비스산업에 대한 차별적 조세를 시정하고 연구개발과 투자를 촉진하는 형태로 조세 제도를 운영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강석훈 성심여대 교수는 산업정책의 변화를 주문한다. 그는 "산업정책은 산업인프라 정책으로,산업경쟁력 제고정책은 산업인프라 강화정책으로 재탄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구 증가를 기대할 수 없고,고정자본투자의 기대수익률도 낮아지는 상황에 처한 한국경제의 업그레이드를 위해 '총요소생산 증대'가 필수적이라고 말한다.

특히 그는 미래 산업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키워드로 '무형'과 '융합'을 꼽는다. 공장 증설 등 유형투자만으로는 새로운 성장잠재력을 만들어낼 수 없다는 설명이다.

디자인 등으로 확대되고 있는 무형자산의 개념을 보다 확대해 이 분야의 투자를 촉진하는 정책을 시행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또 "무형과 밀접하게 연관되는 키워드가 '융합'"이라며 "융합을 촉진할 수 있는 인적자원 육성과 함께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