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8년 9월 치명적인 감기 바이러스가 미국 매사추세츠의 군부대를 덮쳤다. 열흘 만에 7000명의 군인이 감염됐고 한 달 만에 보스턴 주민 100여명이 사망했다. 4개월여 만에 창궐하던 질병의 위세가 한풀 꺾인 뒤 피해를 집계해 보니 무려 2500만명이 감염,55만명이 운명을 달리했다.

《오리진》의 저자는 "그렇다면 이 시기에 엄마 뱃속에 있던 아이들은 어떻게 됐을까"에 주목하고 경제학자 앨먼드를 찾아간다.

"평균적으로 나쁜 결과더군요. 그때 태아였던 사람들의 고등학교 졸업률은 15% 낮았고, 평균 연봉이 5~9% 적었으며, 심장병 환자나 장애인이 된 비율도 다른 해에 태어난 사람들에 비해 20% 이상 높았어요. "

저자의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사실관계를 확실히 하기 위해 뒤져본 1986년 체르노빌 원전사고의 영향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앨먼드는 한마디 덧붙인다. "태아기를 잘 보내면 그 이익이 모두에게 돌아오며,그렇지 못하면 사회가 부담하는 비용이 커지게 되죠.그런 의미에서 1918년의 독감 대유행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

이 책은 제목 그대로 '기원'에 관한 이야기다. 두 아이를 둔 미국의 과학전문 기자인 저자는 '사람들은 나이를 잘못 계산하고 있다. 모든 사람이 제 나이보다 몇 달씩은 더 먹었다'는 토머스 브라운의 말을 빌려 엄마 뱃속에서의 9개월에 시선을 고정한다.

1918년의 미국 바이러스 이야기처럼 태아는 엄마 뱃속에서의 그 무엇이 아니라 이미 하나의 생명,아니 인간으로서 세상을 살아가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책은 총 9장으로 구성,1개월부터 9개월까지 저자가 자신의 몸을 취재하며 일기 형식으로 풀어낸 임신과 출산에 관한 가이드북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보 전달에 무게를 두진 않는다. 임신 중 술을 마셔도 되는지,담배는 얼마나 해로운지,운동은 얼마나 해야 하는지 등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는 별로 없다. 하지만 책장을 넘기다 보면 왜 이 책이 출간과 동시에 '타임' 표지를 장식하고 아마존 베스트셀러에 올랐는지를 알게 된다. 역자는 이렇게 말한다.

"임신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먹지 말아야 할 것,하지 말아야 할 것,보고 듣지 말아야 할 것 같은 금기사항뿐이다. 거리를 활보하던 여성은 임신을 확인하는 순간 새장 속의 새가 된다. 왜일까. 축복받아야 할 임신부가 왜 온갖 걱정을 달고 사는 걸까. 그것은 모르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왜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알게 된다면 우리는 한층 편안한 마음으로 임신의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