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명학이 퍼졌다면 근대화가 빨랐을까

입력 2011-09-23 17:31:42 | 수정 2011-09-24 04:16:33
인문학 산책 - 한국고전번역원과 떠나는 지식여행

"조선시대 양명학 핍박 받았다"…日帝 거치며 엉뚱한 '전설'로
조선 선비들, 왕양명 글 높이 평가…특별하지도 위험하지도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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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명학의 전설을 들은 적이 있는가. 하나는 핍박의 전설.조선시대에는 책상 위에 양명학 책만 있어도 잡혀 가서 처벌됐고,양명학자는 목숨을 잃지 않으려면 겉으로 주자학자 행세를 했다는 내용이다. 또 하나는 복음의 전설.우리나라도 조선시대에 주자학을 하지 말고 양명학을 했더라면 일본처럼 일찌감치 근대화에 성공했을 텐데 지긋지긋한 주자학을 하는 바람에 근대화에 뒤처졌다는 것이다.

핍박과 복음,그야말로 전설이다. 식민지 시절과 냉전 시절,조국 근대화 시절을 살았던 우리 사회의 짓눌린 역사의식이 그려낸 빈곤한 허상이다. 오늘날에도 치유되지 않고 우리의 마음을 유령처럼 배회하는 20세기의 구시대적인 그림자다. 하지만 조선시대 선비들은 양명학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그들도 이런 전설에 중독돼 있었을까. 1917년 왕양명의 문집을 정선해서 《양명집초》를 편찬한 황병중(黃炳中 · 1871~1935)의 글을 보자.

그는 왕양명(王陽明)의 문집을 읽고 "격조와 음운이 맑은 물에 핀 부용(芙蓉)과 같고 선부(仙府)에서 들리는 아악과 같았다. 읽을수록 아름답고 아름다워 심지어 침식을 잊기까지 하였다. 문득 만약 고문에서 구해 본다면 소식(蘇軾)과 구양수(歐陽脩)와 가깝지만 말과 이치가 모두 도달하고 꽃과 열매가 모두 구비된 경지에 있어서는 이 두 사람도 거의 미치지 못한다"고 분석했다.

그런 다음 "다만 논의가 주자학과 배치되는 것이 참으로 옥에 티"라고 지적하고는 "그러나 후에 이 글을 읽는 자 또한 이 때문에 그 글을 모두 버리는 것은 옳지 않다"고 진단했다.

'먼저 정주(程朱)의 법문을 세워 우뚝 흔들림이 없는 연후에 장래에 이해하고 연구하되 단지 온후자상(溫厚慈詳)하고 평이간절(平易簡切)하고 선명효창(鮮明曉暢)하고 우여완전(紆餘婉轉)한 문체를 배운다면 거의 삼대의 작자의 법이 음악 속의 기상에 근본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옛날 주자(朱子)는 소식의 글이 이치와 어긋난다고 배척했지만 도리어 맏아들에게는 수독(受讀)하게 하였다. 모르겠지만 이치에 어긋나지 않은 것을 고른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어째서 이미 배척하고는 다시 읽으라고 시켰을까? 가만히 이를 본받고 싶어 함부로 설을 짓는다. '

황병중은 전라도 광양 선비다. 신미양요가 일어난 해에 태어나 20대에는 동학농민운동의 격류에 휩쓸렸고,30대에는 을사늑약의 충격과 의병운동의 불길 속에 있었으며,40대에는 식민지 치하에서 통곡과 독서로 세월을 보냈다. 신득구(申得求) 송병선(宋秉璿) 최익현(崔益鉉) 전우(田愚)의 문하에 출입한 도학자였고 황현(黃玹)에게 아낌을 받은 문인이었다.

그가 왕양명의 글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01년 전우의 조언 덕분이다. 도학은 물론 문장까지 겸비하고 싶었던 그의 마음을 알아본 전우는 조언을 구한 그에게 작문의 힘을 얻으려면 왕양명의 글을 읽으라고 충고했다.

전우가 황병중에게 왕양명의 글을 읽으라고 추천하다니! 설마 전우 같은 도학자가 정말 작문의 비결로 왕양명의 글을 추천했을지 미심쩍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도학으로 보는 왕양명과 문장으로 보는 왕양명은 충분히 병존할 수 있는 것이었다.

황병중이 《양명집초》를 편찬한 가장 큰 이유는 문학에 있었다. 자신이 명청(明淸)의 글을 읽어 보았는데 모두 수준 미달이었고 오직 양명의 문체만이 순수하더라는 것이다. 왕양명의 글이 명청 제일의 글인지는 이론의 여지가 있겠지만 정조 같은 도학 군주도 '일득록(日得錄)'에서 왕양명이 학술은 달라도 문장은 명대 제일인자라고 극찬한 적이 있었다.

김시민(金時敏 · 1681~1747) 같은 사람은 왕양명의 문집을 한유(韓愈)의 벽불 문자나 육지(陸贄)의 경세 문자보다 더 탁월한 작품이 있다고 칭찬했고,그 밖에도 왕양명의 문학을 높이 평가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조선 후기에는 왕양명의 학술과 문장을 비평했던 오랜 전통이 있었다. 그것이 20세기 전반에도 이어져 황병중의 《양명집초》가 출현할 수 있었다. 양명학에 관한 '전설'과 달리 조선 후기에 책상 위에 양명학 책이 있다고 잡혀가 목숨을 잃은 사람도 없었고,양명학에서 근대화를 예감하고 열광했던 사람도 없었다. 조선 사회에서 양명학은 그다지 위험하지 않았고 그다지 특별하지도 않았다.

도학도 잘하고 싶고 문장도 잘하고 싶은 소박한 마음,중국 문학사에서 왕양명을 평가하고 싶은 거창한 마음,왜 황병중 같은 사람의 그런 마음을 그리도 몰라주고 우리는 양명학에 관한 수입된 문제의식 속에서 엉뚱한 '전설'을 만들어 왔던 것일까.

▶원문은 한국고전번역원(itkc.or.kr)의 '고전포럼-고전의 향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노관범 < 가톨릭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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