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모건 골드만삭스 HSBC를 움직이는 손,전 세계 다이아몬드의 80%를 생산하는 드비어스 광산을 소유한 기업,세계 5대 와이너리 중 무통과 라피트 2개를 보유한 회사.이들의 공통점은 한 가문,바로 로스차일드가(家)다.

'이스라엘 건국을 주도한 시오니스트의 맹주' 혹은 '국제 금융을 지배하는 숨은 권력'이라는 다양한 평가를 받고 있는 이 가문에 대해 《슈퍼리치 패밀리》의 저자는 딱 잘라 말한다. "거두절미하고 영세한 고물상에서 출발해 250년이라는 세월 동안 유럽을 넘어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로스차일드 가문이야말로 경영의 진수를 보여준다"고.

저자가 꼽은 로스차일드가의 경영 비결은 크게 다섯 가지다. 첫 번째가 가족경영.전문경영인도 좋지만 가문에 충실하고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은 로스차일드라는 이름을 물려받은 사람밖에 없다는 것.두 번째는 정보력이다. 유럽 각지에 흩어져 사업 기반을 마련한 다섯 형제들의 긴밀한 교류는 어떤 국가의 국왕보다 정보력이 강했다. 나폴레옹의 라이벌이던 웰링턴에게 군자금을 대던 중 나폴레옹의 패전소식을 가장 먼저 접해 대박을 터뜨린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외에 비밀 정보 네트워크를 활용한 생존능력과 진취적인 노마드 정신, 그리고 변화를 주도하는 열린 생각 등을 핵심 가치로 꼽고 있다.

로스차일드가 고종을 만나려 했다는 이야기에선 귀가 번쩍 뜨인다. 당시 러시아와 대립구도를 형성했던 로스차일드는 일본을 지원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고, 나아가 러시아 압박의 일환으로 조선을 택하고는 1906년 5월5일 고종과의 회동을 계획했다. 하지만 일본의 공작으로 만남은 무산됐다. 저자는 이에 대해 "만일 로스차일드와 고종의 만남이 이뤄졌다면 한반도의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라며 "그와 별개로 고종이 헤이그가 아닌 미국의 월스트리트나 영국의 시티로 특사를 보냈으면 어땠을까"라고 무의미하다는 역사의 가정을 해보기도 한다.

'글로벌 기업' 로스차일드가의 창업자 마이어 암셀의 유언은 묘하게도 지금 세계시장을 누비는 한국 대표 기업들의 경영전략과 오버랩된다. 임종을 앞둔 마이어 암셀은 아들들에게 한 묶음의 화살을 주고는 부러뜨려 보라고 한다. 하지만 누구도 화살뭉치를 꺾지 못하자 그는 화살을 하나씩 꺼내 부러뜨리면서 유언을 남긴다. "너희들이 하나로 묶인 화살뭉치처럼 결속하는 한 강력할 것이다. 그러나 서로 멀어지면 부러지는 화살처럼 곧바로 끝날 것"이라고.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