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남이가'식 악성 연고주의와 당파성이 한국 사회를 흔들고 있다. 네편이냐 내편이냐에 따라 죄와 벌이 달라지고 논리가 뒤죽박죽되는 한국의 정치판이다. 보편적 가치는 고사하고 최소한의 일관성마저 팽개친 저급의 동류의식이다. 강용석 의원이나 곽노현 교육감에 대한 정치권과 사회단체들의 행동 패턴이 바로 그렇다. 오로지 투쟁인 단체들도 마찬가지다.

얼굴은 두꺼워지고 부끄러움도 없다. 근대적 시민의식에 기반한 합리적 소통도 없다. 오로지 낡은 조폭들의 의리를 방불케 한다. 이념은 훼절되고 궤변과 억지만이 춤을 춘다. 지연 혈연 학연의 족쇄조차 벗어던지지 못하는 사회다. 정치성향과 동류의식에 따라 붕당으로 움직이는 봉건사회다. 중산층의 중핵을 이루는 변호사 의 · 약사 등 전문집단조차 최근에는 유사한 행동 성향을 보인다. 모두가 떼를 지어 악을 써대는 사회다. 조폭의 의리에도 최소한의 규칙은 있을 테다.

FTA는 죽이고 강용석은 살린 집단 A

한 · 미 FTA는 상임위에 상정조차 되지 않았고,성희롱 발언 파문을 일으킨 강용석 의원 제명안은 부결되고 말았다. 8월 임시국회는 그렇게 끝났다. 국가 이익보다 동료의원 감싸기가 더 급하고, 중요했던 게 지금의 대한민국 국회다. 무역으로 먹고사는 나라에서 FTA만큼 화급을 다투는 사안도 없다. 여야는 비준안 상정을 미국 의회에 맞춘다는 데 합의했지만 또다시 미뤘다. 설사 미국과 보조를 맞춘다 해도 최소한 상임위 처리는 끝내고 봐야하는 게 정상이다. 민주당은 10+2 재재협상안을 요구하며 발목잡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설득력도 없거니와 아예 판을 깨자는 얘기밖에 안 된다. 자신들이 집권하는 동안 타결했던 한 · 미 FTA다.

국회는 강 의원을 살려내는 데는 그야말로 한통속이 됐다. 찬성 111표,반대 134표로 제명에 필요한 198표는커녕 반대가 더 많았다. 법원은 유죄판결을 내렸고 국회는 면죄부를 줬다. 국회가 제명안 처리를 비공개로 하자고 했을 때 알아봤던 일이다. 전직 국회의장이라는 분은 "강 의원에게 돌 던질 사람이 있나"라고 했다고 한다. 이런 자기고백을 위안으로 삼아야 할 지경이다. 하기야 '자연산' 발언 등 유사한 망언을 서슴지 않았던 의원들이 양심의 가책을 느꼈을지 모르겠다. 야당도 오십보백보다. 동료를 감싸는 일이라면 여야가 이렇게 찰떡궁합일 수 없다. 자기들의 세비와 연금을 올리는 일에는 여야가 없다. 방탄국회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런 조폭 의리도 없다. 그런 의원들이 청문회에서는 도덕성을 외치고, 대기업 회장들을 불러 호통을 쳐댄다. 이중인격이요 위선이다.

곽노현 구하기로 돌아선 집단 B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의 자진 사퇴를 촉구하던 민주당 등 야권이 돌연 곽노현 감싸기로 표변했다. 야권과 전교조 등 진보좌파 단체들은 피의사실 공표 금지,무죄추정 등을 내세워 되레 검찰 수사를 비난하고 나섰다. 심지어 선거비용 35억원을 게워내야 한다면 모금해 줄 테니 끝까지 버티라는 주장까지 난무한다. 이에 고무된 곽 교육감은 막중한 책임감으로 교육감직을 계속 수행하겠다고 한다. 자신을 밀었던 진보좌파 진영에 '막중한 책임'을 느낀다는 자백이자 그를 뽑은 서울시민에 대한 모욕이 아닐 수 없다.

야권이 꼬리자르기에서 곽노현 구하기로 돌변한 것은 이른바 진보좌파가 코너에 몰렸을 때 늘 보여온 행태 그대로다. 실체적 진실은 덮어놓고 정치적 음모론을 제기해 핍박받는 양 행세하는 것이다. 하지만 곽 교육감이 박명기 후보에게 200만원도 아닌 2억원을 준 것은 스스로 고백한 사실이다. 그 돈이 대가성이 있는지,개인 자금인지 여부는 검찰이 가릴 일이다. 그런데 2억원을 줬다는 객관적 사실은 애써 외면하고 진보좌파의 아이콘인 곽 교육감이 주장하는 '선의'만 믿겠다는 식이다. 우파가 돈거래하면 부패이지만,좌파가 돈거래하면 선의라는 황당한 논리다. 무슨 짓을 했든 내편은 감싸고 보겠다는 조폭의 의리와 다를 게 없다.

곽 교육감이 공소시효를 알았는지에 대한 논란은 코미디다. 그럼에도 야권이 곽노현을 감싸는 것은 앞으로의 정치구도 때문이다. 계속 버텨 법정공방으로 가야 교육감 보선도 내년 4월 총선 이후로 미뤄 지금의 역풍을 피해할 수 있다는 전략적 셈법이다. 강용석을 구한 여권이나,곽노현을 구하려는 야권이나 패거리 논리에 함몰되어 있는 것은 다를 게 없다.

강정마을과 병원을 뒤집어놓은 집단 C

박재갑 국립중앙의료원장의 자진사퇴를 불러온 이 병원 노조의 몰지각한 행태는 정말 상식 밖이다. 파업 전야제를 한답시고 입원실 옆에서 확성기로 구호를 외치고 꽹과리를 쳐대며 환자들을 괴롭혔으니 일반 노조도 아닌 병원 노조에서 일어난 행동이라고는 결코 볼 수 없다.

주목할 것은 국립중앙의료원 노조의 상급단체인 민주노총 간부들과 보건의료노조 서울지부 지도부가 이번에도 여지없이 개입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이 문제의 전야제를 지휘했던 모양이다. 박 원장이 병원 직원들만 있었다면 직접 나서서 설득하려 했지만 외부단체가 끼어 있어 무력감을 느꼈다고 퇴진 이유를 밝힌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 병원 노조는 외부세력의 개입에 고무돼 자신의 목적만 달성되면 그만이라는 자극적인 투쟁노선으로 흘러가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병원의 존재 이유 따위는 스스로 부정해버리는 극한 투쟁을 초래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해군기지가 건설될 제주도 강정마을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주민투표를 거치고 토지보상까지 끝나 진작에 공사에 들어갔어야 할 국책사업에 뒤늦게 현지 주민도 아닌 외부단체들이 반대한다고 몰려가 진을 치는 바람에 경찰이 서울에서까지 내려가 현장을 지키고 있는 상황이다. 급기야 법원에서 공사를 방해하지 말라는 결정까지 내렸는데도 반대단체들은 3일 현지에서 2000여명이 참석하는 문화행사와 행진을 갖겠다고 끝까지 어깃장을 놓고 있다. 정부를 공격할 구실을 찾기 위해 공권력이 투입되길 바라는 분위기이고 자칫 불상사라도 일어난다면 이때는 쾌재를 부를 태세다.

이런 식으로 대한민국은 점차 몰상식과 위선과 거짓 논리에 포위되고 있다. 희망버스,평화비행기라는 궤변이 동원되는 것은 물론이다. 거짓언어들이 총동원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