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위기는 폭풍의 시작, 2008년보다 위험한 상황"
로버트 졸릭 세계은행 총재(사진)가 최근의 글로벌 경제위기 상황을 "폭풍의 초반 국면"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유로화를 사용하는 유로존 국가들의 재정위기는 구조적인 문제여서 중장기적인 미국의 재정위기보다 더 심각하다고 경고했다. 세계경제 불균형을 해소하는 데 소극적인 중국을 '머뭇거리는 이해관계국(reluctant stakeholder)'이라고 비난했다.

졸릭 총재는 13일 호주 신문인 위크엔드 오스트레일리언과 가진 인터뷰에서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때와는 성격이 다른 폭풍이 이제 막 몰아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신용경색 때보다 사람들의 빚은 적지만 이번에는 해결책을 모색할 공간이 더 작다"고 분석했다. "대부분의 선진국에 경기를 부양할 국가 재정상의 여유가 없고 통화정책도 이미 느슨해질 대로 느슨해진 상황"이라는 것이다.

졸릭 총재는 이 때문에 "세계경제가 더욱 위험한 국면으로 진입했다"고 덧붙였다.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신흥국가들과 일부 국가들의 경제가 빠르게 회복하고 선진국들의 경제는 더딘 회복세를 보인 게 문제였다"면서 하지만 "이제 다른 유형의 불확실성이 자신감을 약화시켜 기업의 (투자) 결정과 소비자들의 (지출) 결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유로존 시스템은 세계가 직면한 가장 중요한 도전이 될 수도 있다"며 "지금까지 유럽연합(EU)은 해결책이 될 수 없는 조치를 취해왔다"고 비판했다. "영국 정부의 재정지출 축소는 정말 필요하다"면서 "정치가 발목을 잡아 예정된 긴축 코스에서 이탈하는 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최악의 폭동사태로 궁지에 몰린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재정 긴축 조치들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반면 미국 국무부 부장관과 무역대표부(USTR) 대표를 지낸 졸릭 총재는 "미 연방정부의 재정적자 문제는 중장기적으로 관리가 가능하다"며 다만 "국민의 고령화로 급속하게 늘어나는 사회복지비 지출을 어떻게 줄일 것인지에 대해 시장을 충분히 설득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또 "미국은 장기적인 경제성장을 위해 투자 확대와 인프라 개선,무역 자유화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권고한 뒤 한 · 미자유무역협정(FTA)을 포함한 3개 FTA의 조속한 의회 비준을 촉구했다.

그는 급속한 경제성장과 함께 글로벌 위상이 높아진 중국의 역할도 강조했다. 국영기업에 의존하는 것보다 자유로운 시장기능을 확대하며,위안화 가치를 더 절상할 경우 세계경제 불균형이 해소될 가능성은 커진다고 주장했다. 또 효율적이고 투명하게 작동하는 금융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는 일에 주저하지 말고 적극 동참하는 '책임 있는 이해관계국(responsible stakeholder)'의 면모를 보여 달라고 중국을 압박한 것이다.

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