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구글 페이스북….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급부상한 이들 기업에는 공통점이 있다. 히라노 아쓰시 (平野敦士 · 46 · 사진) 일본플랫폼전략협회 이사장 겸 전략 컨설팅회사 네트스트래터지 대표는 "파편 조각처럼 흩어져 있던 전 세계인들의 생각을 하나로 모아주는 장소(플랫폼)를 만들고,이를 다시 상품 개발에 접목시킨 점"이라고 말했다.

히라노 대표는 지난해 12월 펴낸 《플랫폼 전략(Platform strategy)》으로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올랐다. 플랫폼 전략은 일본 대형서점 기노쿠니야(紀伊國屋)와 산세이도(三省堂)에서 경영서적 부문 베스트셀러를 차지한 데 이어 지난 1월 미국 아마존닷컴에서도 경영서적 부문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다. "치밀한 경영 전략과 더불어 고객 접점의 '장'(場) 개발,즉 플랫폼 구축이 기업 존망에 직결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히라노 대표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 현대자동차 등 한국의 간판 기업들이 애플과 구글 등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기존 플랫폼 전략을 재점검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1987년 도쿄대 경제학부를 졸업한 뒤 일본흥업은행에 들어간 그는 온라인 쇼핑몰 도코모닷컴과 라쿠텐 옥션 등에서 각각 이사를 지냈으며,2000년부터 글로벌 기업들의 플랫폼 전략을 연구해왔다.

▼'플랫폼'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간단히 말해 '둘 이상 서로 다른 집단을 만나게 해주고 거래가 이뤄지도록 하는 장소' 정도로 이해하면 됩니다. 최근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갤럭시S와 애플 아이폰 등이 제공하는 다양한 앱스토어도 새로운 형태의 플랫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모바일에서 소프트웨어를 작동하는 마이크로소프트(MS)의 윈도나 구글의 안드로이드 같은 운영체제(OS)도 플랫폼의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앞으로 더 많은 그룹과 관계자들이 가치 있는 플랫폼을 만들어 서로 공유할 것입니다. "

▼플랫폼이 주목받는 이유가 있습니까.

"세계의 기술 혁신 속도에 주목해야 합니다. 디지털 컨버전스(융합)와 통신기술 발달로 전화와 방송 통신 출판 등이 하나로 통합되는 '미디어 수렴'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플랫폼 재편이 더욱 더 빠른 속도로 일어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는 셈입니다. 애플과 페이스북 등은 이미 미디어 수렴을 위한 하나의 출입구가 됐습니다. 플랫폼은 판매자와 구매자 양측을 가급적 많이 연결해야만 이익을 낼 수 있습니다. 플랫폼이 창출하는 기대 가치는 플랫폼에 참여하는 사람이 늘어남에 따라 동시에 증가합니다. "

▼플랫폼 전략으로 성공한 사례를 소개해주시죠.

"온라인상에서 불법 음악 내려받기(다운로드)가 인기를 끌었던 2000년대 당시 애플은 저작권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음악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당시 불법 복제에 위기감을 갖고 있던 레코드 회사들은 자신들의 음악 콘텐츠를 애플 플랫폼에 제공했고,소비자들은 아이팟과 아이폰 등 애플의 휴대용 단말기를 통해 음악을 들었습니다. 애플은 미국 대형 소매기업 월마트를 제치고 미국 최대 음원 판매자가 됐습니다. 아이폰이란 플랫폼을 보유한 애플은 아이폰용 애플리케이션 개발자들이 번 돈에 비해 훨씬 많은 수익을 챙겼습니다. "

▼스마폰시대를 연 게 플랫폼 전략이라는 평가도 있습니다.

"애플은 스마트폰 시대의 혁명가입니다. 휴대폰 개발은 물론 소비자들로부터 인기를 끄는 앱스토어를 개발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앱스토어가 만들어낸 소프트웨어 시장은 기업과 개인 개발자가 공생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어냈습니다. 소비자들도 플랫폼을 통해 다양한 제품을 구매할 수 있게 됐습니다. 앱스토어라는 플랫폼을 만들어낸 것이 스마트폰 시대를 가능하게 한 원동력이었습니다. "

▼많은 기업들이 소셜 네트워크 사이트(SNS)를 제품 판매를 위한 플랫폼으로 이용하려고 합니다.

"SNS는 엄밀히 말해 기업들이 생각하고 있는 플랫폼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SNS 대표주자인 페이스북의 경우 외부 개발자들이 개발한 게임을 위한 플랫폼을 제공하지만,기본적으로 이곳은 친구와 얘기를 하거나 사귀기 위해 찾는 곳입니다. 친구에게 매일 '이것을 사라,저것을 사라'고 얘기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기업들은 SNS를 단순한 플랫폼으로만 생각해서는 성공할 수 없다고 봅니다. 기업으로서 제품에 대한 신뢰감을 소비자들에게 심어주는 게 중요합니다. "

▼플랫폼을 성공적으로 구축하려면.

"사회와 라이프 스타일 변화라는 큰 흐름을 파악해야 합니다. 또 어떤 업종에서 어떤 가치를 제공할 것인지 신중히 파악해야 합니다. 플랫폼 내의 그룹이 활발하게 교류할 수 있는 시스템도 만들어야 합니다. 플랫폼이 존재하기 전보다 더 활발하게 그룹 간 교류가 있어야 합니다. '네트워크 효과'라고 불리는 입소문을 낼 수 있는 구조야말로 성공하는 플랫폼의 특징입니다. 이 구조가 만들어지면 선순환이 이뤄지면서 자가 증식을 하듯 플랫폼이 확대됩니다. 이후 가격 전략과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어떤 그룹으로부터 어떻게 수익을 얻을 것인가를 결정합니다. 중요한 것은 플랫폼의 규칙을 만들고 관리하는 것입니다. 규칙이 존재하지 않는 플랫폼에서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사태가 일어날 위험이 있습니다. "

▼온라인 업체들의 플랫폼 성공 사례가 많습니다. 오프라인 매장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오프라인 사업에 치중해온 스포츠용품 업체 아디다스가 지난 4월 일본 최대 온라인 쇼핑몰 라쿠텐(樂天)에 입점했습니다. 적은 비용으로 많은 고객을 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명동이 1급 상권 지역이지만 이곳에 입점하려면 적지 않은 자금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페이스북 등에서는 제품을 알리는 데 따로 돈을 내지 않아도 됩니다. 거래 비용을 낮추는 것입니다. 신용카드가 매장과 고객 모두에게 거래 비용을 낮춤으로써 성공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

▼한국 기업들에 조언한다면.

"한국은 인터넷 검색과 MP3플레이어,SNS 등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글과 애플 등에 시장 주도권을 내주고 있어 플랫폼 경쟁력을 재점검해야 할 시점이라고 봅니다. 삼성전자와 LG전자에 소비 가전과 웹을 연결하는 지금의 모바일 혁명은 큰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최근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 등 한국의 통신업체들도 '탈(脫)통신'을 외치며 플랫폼을 주력으로 삼겠다고 선언한 것으로 압니다. T스토어의 성공으로 주목받고 있는 SK텔레콤은 각종 모바일 사업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하는 동시에 플랫폼 사업을 분사해 모바일 서비스 플랫폼을 한층 강화해야 할 것입니다. 정보기술(IT) 발전으로 네트워크 효과,즉 입소문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플랫폼은 계속 진화할 것입니다. "

장성호 기자 ja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