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태종(太宗) 이세민(李世民)은 황후 장손씨(長孫氏)가 세상을 뜨자 대형 무덤 소릉(昭陵)을 만들어 안장했다. 그는 궁 안에 대형 누각을 쌓은 뒤 자주 올라 그곳을 바라보곤 했다. 어느 날 재상 위징(魏徵)과 함께 누대에 올라 소릉을 보라고 했다. 그러자 위징은 "신은 눈이 어른거려 잘 보이지 않습니다"고 말했다. 저곳이 어찌 보이지 않느냐는 핀잔에 위징은 이렇게 받아쳤다. "저는 폐하께서 헌릉(憲陵)을 보시는 줄 알았습니다. "

헌릉은 당을 개국한 이세민의 아버지 고조 이연(李淵)이 잠든 곳.아버지는 팽개치고 죽은 아내만 생각한다는 위징의 암시에 충격을 받은 이세민은 곧바로 누대를 헐어버리도록 했다.

《제감도설(帝鑑圖說)》에 실린 이세민에 관한 일화다. 이 책은 만주족 청나라에 밀려 국운이 위축되던 명나라 말기,재상 장거정(張居正 · 1525~1582)이 불과 열 살에 보위에 오른 어린 황제를 가르치기 위해 지은 그림책이다. 과거 중국 황제의 행적 중에서 본보기로 삼을 만한 이야기 81가지를 선정하고,이래서는 안 되는 이야기 36가지를 추려 모두 117가지 이야기를 담았다. 주역에서 양수인 9를 거듭 곱한 81과 음수인 6을 거듭 곱한 36이라는 숫자를 더한 것이다.

제목은 황제가 거울로 삼아야 할 내용을 추려 그림과 설명을 곁들인 책이란 의미.이세민은 위징이 죽은 뒤 이렇게 말했다. "무릇 구리로 거울을 만들면 의관을 바르게 할 수 있고,옛날을 거울로 삼으면 흥망을 알 수 있으며,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득실을 명확히 알 수 있다. 나는 항상 이 세 가지로 나 자신의 과오를 방비했다. 하지만 위징이 죽은 지금,나는 그 거울 셋 중 하나를 잃고 말았다. "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