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 기아자동차가 미국 시장점유율 '마의 10%대'를 돌파한 2일.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임원들에게 "기본에 더욱 충실하자"고 주문했다. "성취에 도취하지 말고 좋은 차를 만드는 데 더 힘을 쏟아야 한다"는 뜻이라고 현대차 관계자는 전했다. 이 관계자는 "과거엔 엑센트 아반떼 등 소형차가 중심이었다면 앞으로는 쏘나타 싼타페 쏘렌토 아제라 제네시스 등 중형급 이상이 미국 시장을 주도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점유율 10%는 시작일 뿐이며 이제부터 질적 성장이 더 중요해졌다는 지적이다. 현대 · 기아차의 미국 진출 25년은 위기와 기회가 늘 함께했다.

◆'부르몽 악몽'에서 앨라배마의 도전

현대차는 1986년 2월 '차 한 대 값으로 두 대를 살 수 있다'는 광고를 내세우며 '엑셀'을 미국 대륙에 첫 상륙시켰다. 그해 16만8000대,이듬해 26만3000대를 팔아 '엑셀신화'를 만들었다. 고 정주영 회장이 고유 모델 '포니'를 만든 지 10년 만이었다.

자신감이 붙은 현대차는 1989년 캐나다 몬트리올 부르몽에 공장을 지었다. '쏘나타Ⅱ'를 생산했지만 결과는 참패였다. 품질이 떨어진 데다 공장환경도 생소하다 보니 좋은 차가 나올 수 없었다. 결국 1995년 부르몽공장은 문을 닫았다. 그 이후에도 낮은 품질 · 서비스가 현대차의 발목을 잡았다. 글로벌 경기침체가 다가온 1998년에는 판매량이 10만대 밑으로 곤두박질쳤다.

정 회장은 "최대 시장인 미국을 못 잡으면 미래는 없다"며 승부수를 던졌다. '부르몽의 악몽'을 딛고 2001년 앨라배마 현지 공장을 착공했다. 2005년 '메이드 인 USA' 마크가 달린 쏘나타가 나오기 전에 현대차는 '10년 · 10만마일 품질보증'을 들고 나왔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점유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극약처방'을 쓰고 있다"고 비웃었지만 미 시장에서 신뢰를 얻는 결정적 계기였다. 현대차는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미국 경제가 휘청거릴 때 '어슈어런스 프로그램(고객이 실직할 때 차를 되사주는 것)'을 도입해 또 한번 미국 시장을 놀라게 했다.

◆캠리와 어코드를 추월한 쏘나타

현대 · 기아차가 마의 10%대를 넘어선 데는 자동차 품질 개선이 뒷받침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2004년 미국 자동차 조사회사인 JD파워의 신차 품질조사에서 현대차는 사상 처음으로 도요타를 제치고 4위에 올랐다. 아반떼는 2008년부터 올해까지 4년 연속 모든 자동차 브랜드를 제치고 최우수 소형차로 선정됐다. 제네시스는 2009년 '북미 올해의 자동차'로 뽑혔다. 현대 · 기아차 남양연구소 관계자는 "품질과 성능에서 도요타는 이미 따라잡았고 벤츠와 BMW에도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강조했다. 도요타가 미국 시장에서 점유율 10%대를 굳힌 것은 2000년 이후다.

지난 5월 중 미국 시장에서 쏘나타(2만2754대)는 경쟁모델인 도요타 캠리(1만8830대)와 혼다의 어코드(1만7018대)를 앞질렀다. 또 준중형차에선 아반떼가 도요타의 코롤라와 혼다의 시빅을 나란히 제치고 3위로 올라섰다. 럭셔리 세단 에쿠스도 매월 200대 이상 꾸준히 팔리고 있다. 지난 10년간 지속된 품질경영의 성과가 결실을 맺고 있다는 분석이다.

조철 산업연구원 연구원은 "도요타가 30년 이상 걸린 미국시장 점유율 10%를 현대 · 기아차는 사실상 10년 만에 따라잡았다"며 "도요타가 미국 시장 10% 돌파 후 8년 만에 글로벌 1위로 부상한 만큼 현대 · 기아차의 향후 성장 속도도 주목된다"고 말했다.

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