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군포에 있는 엔피씨의 박두식 대표이사 부회장(63) 사무실에는 특이한 감사패가 하나 있다. 노동조합이 2007년 3월 박 대표에게 전달한 것이다. 노조가 자사 대표에게 감사패를 수여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왜 줬을까. 그 감사패에는 '노사 화합과 상생의 협조관계 구현을 위해 노력한 점에 감사드린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이 회사는 지난해 직원에게 926%의 특별 상여금을 줬다. 월급과 600%의 기본 상여금 이외에 무려 월급의 10배에 가까운 인센티브를 준 것이다. 박 대표의 경영철학은 '더불어 사는 경영'이다. 노조가 감사패를 준 까닭이다.

한세대와 경기외고 사이 언덕길로 올라가면 오른쪽에 엔피씨가 있다. 회사 안에 들어서면 커다란 유리창으로 싱그러운 신록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름답고 조용한 곳이다. 이 회사의 본사는 반월공단으로 돼 있지만 군포 사무실이 실질적인 본사 역할을 한다.

1965년 창업한 이 회사는 46년간 쓰던 내쇼날푸라스틱 대신 지난 3월 말 사명을 엔피씨(NPC)로 바꿨다. 내쇼날푸라스틱의 영문 이니셜을 딴 것이고 플라스틱에서 한걸음 나아가 친환경 물류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NPC는 국내 플라스틱 사업의 개척자다. 1960년대와 1970년대 플라스틱 바가지에는 대부분 내쇼날푸라스틱이라는 글씨가 쓰여 있었다. 바로 이 회사가 만든 제품이다. 창업 후 생활용품과 산업용품을 병행해 만들던 이 회사는 1990년대 중반부터 산업용 제품 중심으로 제품군을 급격히 탈바꿈시켰다.

지금의 주력 제품은 플라스틱 팔렛과 플라스틱 컨테이너다. 이 중 팔렛이 지난해 매출 2117억원의 약 65%를,컨테이너가 35%를 차지한다. 팔렛은 지게차가 중량물을 들어올리기 위해 물건을 적재하는 사각형 판을 말한다. 제품 운반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다. 예컨대 삼성전자가 TV나 냉장고 LCD패널을 수출할 때도 포장한 뒤 팔렛 위에 얹어서 컨테이너 등에 싣는다. 기계나 전자 금속제품 등 거의 모든 생산품은 팔렛으로 옮긴다. 물류의 중심 역할을 하는 만큼 가볍고 튼튼해야 한다. 이 회사의 팔렛은 수t의 중량물을 담아도 끄덕없게 설계돼 있다. 몸무게만 분산된다면 코끼리를 실어도 될 정도로 튼튼한 팔렛도 생산한다.

주요 원자재는 폴리에틸렌(PE)과 폴리프로필렌(PP)이다. 일반적으로 플라스틱제품 업체라면 환경 오염의 주범처럼 생각하게 마련이다. 플라스틱이 잘 썩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회사는 친환경기업임을 자랑스럽게 내세우고 있다.

왜일까. 박두식 대표는 "우리는 전국에서 분리수거되는 재활용 플라스틱을 이용해 팔렛을 만든다"며 "재활용을 하는 만큼 탄소 배출 저감효과가 있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플라스틱 재활용을 통해 탄소 배출을 줄이는 양은 여의도 14.6배에 이르는 면적에 심은 나무가 탄소 저감에 기여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덧붙였다.

분리수거되는 각종 플라스틱 용품이 트럭에 실려 이 회사의 반월 청원 밀양 공장으로 보내진 뒤 제품으로 탈바꿈한다. 박 대표는 "전체 원료의 절반가량을 재활용 플라스틱으로 사용하는데 만약 수거되는 플라스틱이 늘어날 경우 이 비율은 더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싱가포르에도 공장을 가동하고 있는데 그곳에서 재활용 플라스틱을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라며 "세계 어느 나라를 가봐도 한국처럼 분리수거를 잘하는 나라를 못 봤다"고 지적했다.

또 하나의 주력 제품은 플라스틱 컨테이너다. 거대한 트레일러에 실려가는 철제 컨테이너가 아니라 각종 제품을 담는 플라스틱 용기를 말한다. 사이다 콜라 등 음료수를 담는 용기를 비롯해 과일 배추 무 감자 양파 등 각종 농산물을 담는 용기를 만든다. 내용물이 파손되지 않도록 튼튼하면서 가벼워야 한다. 이런 물성을 지닌 제품을 제조하고 있다.

이 회사는 연구 · 개발을 통해 다양한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컨테이너의 부피를 대폭 줄일 수 있는 제품인 절첩식 컨테이너가 한 예다. 경첩을 달아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제품이다. 이 컨테이너는 내용물을 넣어 운반하고 제품을 내린 뒤에는 접을 수 있다. 이 경우 부피를 3분의 1 이하로 줄일 수 있다. 음식물쓰레기 종량제 용기도 개발 중이다. 예컨대 뚜껑을 여닫는 횟수를 기록해 음식물쓰레기 버리는 양이나 빈도를 추정하는 것이다. 그는 "이 같은 방식으로 종량제를 적용할 경우 음식물 쓰레기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당초 가정용과 산업용 플라스틱 제품을 두루 생산하던 이 회사는 1990년대 중반 가정용품을 주로 만들던 서울 대림동 공장의 화재를 계기로 아예 가정용품 생산을 중단하고 산업용품(물류용품) 외길을 걷기 시작했다. 물류 제품은 생산현장에서 항상 쓰이는 것일 뿐 아니라 국내외를 막론하고 공통적으로 수요가 있어 이 분야에 특화하기로 한 것이다. 이들 제품으로 수출에도 나서 현재 수출국이 동남아 유럽 아프리카 등 39개국에 달한다고 박 대표는 말했다.

그는 이 회사 창업자인 임채홍 명예회장(82)의 친인척이지만 전문경영인이나 마찬가지다. 그는 대표이사를 맡은 지 7년 만에 매출을 3.5배 키웠다. 작년 당기순이익은 155억원에 달했다. 당기순이익률이 7.3%에 이른다. 제조업체로선 매우 높은 것이다. 이는 박 대표의 경영능력을 보여준다.

부산고와 한양대 신문학과를 나온 박 대표는 1980년대 이 회사에 입사해 경영을 배웠고 잠시 개인사업을 하다가 2003년 재입사해 대표이사 부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더불어 사는 경영'을 모토로 삼고 있다.

종업원이 기업의 주인이라는 생각으로 종업원에게 잘해주고 있다. 그는 이익이 나면 종업원 · 주주 · 회사(사내 유보)가 3분의 1씩 나눠야 한다는 철학을 갖고 있다. 매년 임금협상으로 시간을 보낼 게 아니라 이런 원칙에 따라 경영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초창기 노조는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그걸 어떻게 믿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매월 경영실적을 공표하고 이익이 나면 정확히 배분하자 노조원들이 환영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2007년에는 감사패까지 만들어서 대표이사에게 전달한 것이다.

박 대표는 "종업원이 잘 살기를 바라는 사람은 첫째 본인 자신,둘째 부인,셋째 부모이고 그 다음 순위는 내가 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한다. 그만큼 직원 복지와 상생에 관심을 쏟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아울러 매년 한자 한 글자를 선정해 그 해의 경영지침으로 삼는다. 올해는 '熟(숙)'이다. '익는다'는 뜻이다. 마치 김치나 젓갈이 적절히 익어야 감칠 맛이 나듯 모든 분야에서 원숙한 경지에 도달하자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지난해 한자는 '格(격)'이었다. 발전에 걸맞은 품격을 지니자는 뜻이다.

그는 종업원과 더불어 사는 경영을 통해 회사를 키우고 있으며 임직원의 힘을 결집시켜 엔피씨를 세계적인 물류기업으로 키워나간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돋보기가 햇빛을 모아 종이를 태우듯 임직원의 결집된 힘이 강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김낙훈 중기전문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