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서산은 느린 곳이다. 전형적인 충청도 말씨를 쓴다. 서산의 상서로울 서(瑞)자가 천천히 서(徐)자가 아닌가 싶을 정도다. 바꾸어 말하면 느리다는 건 삶을 음미할 줄 아는 사람들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부춘산(187m) 아래 옛 서산읍내에는 그렇게 느긋하게 삶을 레시피하며 살다간 옛 서주 · 서령 사람들의 숨결과 흔적이 남아 있다. 서산시청 입구에서 고종 8년(1871) 서산군수 오병선이 다시 지은 서령 관아문과 외동헌을 찾는다. 눈은 부릅뜨고 입에는 보주를 문 거북 모양의 비 받침 2기가 관아문 앞을 지키고 있다. 관아문 2층의 누마루에 돌려진 닭 모양 난간(계자난간)이 화려하다.

◆내포의 중심에서 옛 서령의 흔적을 더듬다

문 안으로 들어가자 정면 7칸,측면 4칸 크기의 외동헌이 모습을 드러낸다. 조선 후기 관아의 건축양식을 잘 보여준다. 이 건물은 1977년 현재의 서산시청 본관 자리에서 옮겨 지으며 정 · 측면을 각각 2칸씩 늘려 지은 것이다. 서산시 선거관리위원회 안에서 더부살이하는 서산 객사를 찾는다. 외동헌과 비슷한 시기에 지은 이 건물은 임금의 위패를 모시고 예를 올리는 정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중앙에서 파견한 관리나 외국 사신이 머무는 방과 쪽마루를 두었다.

명림산 기슭,서원철폐령으로 없어졌다가 1924년에 다시 세운 성암서원으로 간다. 맨 위쪽엔 고려 공민왕 때 신돈에게 교살당한 유숙(1316~1368)과 민회빈 강씨(소현세자비)와 그 아들의 억울함을 풀어줄 것을 상소하다 효종의 심기를 건드려 죽음을 당한 김홍욱(1602~1654)을 배향한 사당이 있다. 김홍욱은 죽음을 앞두고도 "언론을 가지고 살인하여 망하지 않은 나라가 있었는가"라고 일갈할 정도로 기개 있는 선비였다. 그러나 시대를 막론하고 곧은 말 하는 버릇은 죽음을 부르는 병이다.

고려시대 폐사지를 지키는 동문동 당간지주와 오층석탑을 찾아 나선다. '젓가락 바위' 당간지주는 남의 집 담벼락에 기대 선 데다 한쪽은 길이마저 짧아서 볼썽사납다. 오층석탑도 4층 · 5층 몸돌과 상륜부 등이 사라진 형태다. 그래도 적당한 체감률로 쌓아올린 탑은 제법 우아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부춘산 전망대 아래 '언덕 위의 하얀 집' 동문동 성당은 소박한 아름다움을 지닌 근대건축물이다. 둥근 천장과 그 아래 두 줄로 늘어선 둥근 기둥들이 바실리카 양식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건물을 완공하고 처음 입당했을 때 신자들의 환호작약하는 모습을 상상한다. 동문동 성당에서 몇 걸음 더 가면 향교가 나온다. 외삼문을 들어서자 높이 33m,둘레 430㎝의 500살 된 늙은 은행나무가 나그네를 반긴다. 가지에 종유석과 같이 생긴 유주(乳柱)를 달고 있다. 유주는 뿌리의 호흡작용을 돕는 '보조장치'다. 늙은 은행나무는 저 혼자도 살기 버거울 테지만 제 몸에 어린 단풍나무까지 키우고 있다. 왜 늙은 나무가 영물(靈物)인지 알겠다.

서산을 대표하는 시장인 동부시장을 둘러본다. 중왕리 굴과 망둥어포,우럭포 등과 어린 시절에 간장에 조리거나 볶아 먹었던 방게가 눈길을 끈다.

◆의상과 선묘의 사랑 얘기에서 읽는 초월의 욕망

푸름을 자랑하는 서산 육쪽마늘밭을 바라보면서 부석면 도비산 자락 부석사로 향한다. 《태종실록》에는 16년(1416)에 태종이 "도비산에서 몰이하고 돌아와 해미현에 머물렀다"는 대목이 나온다. 도비산(351.6m)은 높지 않은 산이라 토끼몰이에 안성맞춤이다. 파란 맥문동 군락이 수놓은 산기슭을 지나자 사천왕처럼 버티고 선 늙은 느티나무 위로 부석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신라 문무왕 17년(677)에 의상대사가 지었다는 이 절은 이름뿐만 아니라 의상과 그를 지극히 사모한 선묘 아가씨의 애절한 사랑과 부석 이야기 등 영주 부석사와 무척 닮은꼴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부석(浮石)이 절 안에 있지 않고 앞바다에 '검은여'라는 이름으로 떠 있다는 점이다. 아마도 의상(625~702)이 살던 시대는 고구려,백제와 벌였던 전쟁의 후유증이 심각했을 것이다. 전후의 삭막한 시대 상황을 탈주 · 초월하고 싶은 욕망이 의상과 선묘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 같은 '치유제'를 생산하고 소비하게 한 배경이 아닐까.

극락전과 심검당을 둘러본 후 근대 선맥의 거인 만공 스님(1871~1946)이 수행했다는 만공굴로 올라간다. 3m가량 돼 보이는 짧은 굴이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눈을 감은 채 경허가 준 조주의 무(無)자 화두를 굴리는 만공을 그려본다. 산신각에 봉안된 선묘의 화상을 들여다보고 나서 뒤꼍으로 돌아간다. 영주 부석사 부석을 꼭 빼닮은 거북바위가 있다. 무거운 등껍질을 둘러쓰고 바다를 헤엄쳐가는 거북은 그 자체가 부석이다. 돌계단에 비켜서서 저 멀리 펼쳐진 서해를 바라본다. 그 옛날 중국으로 가는 뱃길이 있던 바다다. 이곳에 서니 의상과 선묘의 이야기가 비로소 사실감 있게 다가온다.

◆육지가 된 반야의 섬과 '얼 저린' 굴젓

간월도로 가는 길목에서 창리포구를 만난다. 수군의 배를 매어 두던 주사창이 있어 주사창리라 했던 곳이다. 창리는 서해안 풍어굿이 온전히 전승되고 있는 마을이다. 방조제가 완공(1995년)되기 전에는 창리포구에서 배를 타야만 갈 수 있었던 간월도에 닿는다.

마침 썰물 때라 걸어서 간월암으로 건너간다. 간월암은 1914년 무학대사가 세웠다는 절의 폐사지에 만공 스님이 다시 지은 암자다. 물때에 따라 세속과 끊어지기도 하고 가까워지기도 하니 더없이 절묘한 참선 터다.

법당 안엔 17세기 무렵에 조성한 목조보살좌상이 순진무구한 표정을 짓고 있다. 마당 가에 서자 바다 저편에서 붕기풍어제로 유명한 안면도 황도가 손짓한다. 다시 간월도로 건너와 갯벌에서 굴을 '캐는' 할머니들에게로 간다. 간월도는 '어리굴젓'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냉장시설이 없던 옛날에는 늦여름까지 저장해 놓고 먹으려고 짜게 담는 굴젓과 짜지 않게 얼 저려 곧바로 먹는 굴젓으로 구별해 담갔는데 바로 '얼 저린' 굴젓이 어리굴젓이다.

현재의 굴밭은 간척으로 완전히 사라진 줄만 알았던 굴이 살아있다는 것을 발견한 주민들이 돌멩이를 운반해 던져 넣어 다시 조성한 것이다. 이곳에서는 굴을 바위에서 따지 않고 갯벌에서 찾아낸다. 그래서 '토굴'이라고 부른다. 간만의 차가 거센 갯벌에서 자란 간월도 굴은 검은색 줄이 뚜렷한 게 특징이다.

꽃샘추위라지만 갯벌에서 느끼는 추위는 한겨울 못지않다. 할머니들은 저마다 온 몸과 얼굴을 감싸고 빠끔히 두 눈만 내놓은 채 양쪽에 쇠꼬챙이를 박은 '조세'로 굴을 채취해 까고 있다. 간월도 어촌계에는 60여명의 계원이 있는데 한 해 약 60t의 굴을 채취한다고 한다. 채취한 굴은 어촌계에서 전량 수매해 일부는 생굴로 팔기도 하지만 대부분 어리굴젓을 담가 시중에 내놓는다.

반야의 섬에서 아무 깨달음도 없이 서성이다 떠난다. 간월도가 아득히 멀어져가자 다시 길을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움튼다. 왜 내가 살아가는 이 땅은 이렇게 나를 늘 간절하고 그립게 하는가. 사랑할수록 더욱 더 아득해지는 국토여.


천문기상과학관 들러 별자리 체험 즐기고
박속 밀국 낙지탕에 시원한 칼국수 맛 '일품'

◆ 맛집

''세 번째로 맛있는 집'에서 국밥 먹는다. 왜 '첫 번째로 맛있는 집'이라고 안 했어요? 물어보니,서른 남짓한 여인이 웃기부터 한다 처음 오신 손님만 물어보니 귀찮을 거야 없쥬,한다. 차림표에다 써놓을 필요가 어딨것슈,손사래 친다. '(이정록 시 '국밥 한 그릇' 부분)

'세 번째로 맛있는 집'이라고 자신을 한껏 낮추는 식당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지곡면 중왕리 509-1 왕산포 바닷가에 있는 우정횟집(041-662-0763)은 예전에 보릿고개 때 구황식으로 먹었다는 박속 밀국 낙지탕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박속과 함께 낙지 중 최상품으로 꼽는 왕산포 낙지의 부드럽고 연하며 고소한 맛이 혀끝을 사로잡는다. 게다가 낙지를 건져낸 국물에 말아 먹는 시원한 칼국수 맛도 일품이다. 3만~5만원.산지의 낙지 가격에 따라 값이 조금 다를 수 있다.

◆ 여행정보

인지면 애정리 151-8에 지난해 9월 문을 연 류방택천문기상과학관이 있다. 가로 1m×세로 2m 정도 크기의 돌에 1467수(宿)의 별을 새긴 '천상열차분야지도각석'(국보 제228호) 제작에 참여한 12명 중 하나인 서산 출신 금헌 류방택(1320~1402)의 업적과 과학정신을 계승하고 자라나는 세대에게 우주과학의 꿈을 심어주기 위해 건립한 체험 중심의 교육장이다.

지상 2층,지하 1층 건물에 주·보조관측실,천체투영실,전시교육실,시청각실을 갖추고 있다. 천체를 직접 관측하고 입체영상과 함께 가상의 별자리를 체험할 수 있다. 천상열차분야지도 등 각종 유물과 간의,혼천의,측우기,풍기대 등 옛 천문과학기구도 볼 수 있다. 개관 시간은 동절기(9~4월) 오후 2~10시,하절기(5~8월) 오후 3~11시.관람료는 없으며 매주 월요일 휴관한다. (041)669-8496

안병기 여행작가 smreoquf@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