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후 서울 지하철 2호선 교대역 출구.형형색색의 전단지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전단지에는 '갈수록 어려워지는 파산 · 회생 지금이 마지막 기회입니다. 100% 빚 탕감'이라는 큼지막한 글씨가 적혀 있다. '빚을 대신 없애드립니다''100% 면책 가능 무료 상담하세요' 등 빚을 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솔깃할 문구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법원은 가짜 파산자를 걸러내느라 심리를 강화했다고 하지만 불법 브로커들은 여전히 활개치고 있다. 파산신청자 입장에서는 '브로커'와 '고용된 사무장'을 구분할 필요도 없는 데다 여전히 '파산제도를 잘 이용하면 손쉽게 빚을 털어낼 수 있다'는 인식도 강하기 때문이다.

◆활개치는 불법 파산브로커들

지난해 개인파산 · 개인회생 신청자 수는 모두 14만1889명.그 전해(16만5522명)보다 줄기는 했지만 여전히 많다. 신용회복위원회에 따르면 한국의 개인파산 및 개인회생 제도 이용자는 1000명당 3.1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2위다. 이처럼 파산 신청이 많은 까닭은 뭘까. 개인 파산을 부추기는 파산브로커들에게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파산브로커들은 채무자의 재산 상태를 조작해 채무이행을 회피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파산신청을 대신 해주면서 수수료를 챙긴다. 자격증은 변호사나 법무사에게 돈을 주고 빌린 것이다.

기자가 한 개인파산사무소를 방문,법무사에게 파산 상담을 신청하니 "사무장이 모든 일을 총괄한다"는 짤막한 대답이 돌아왔다. 서초동의 한 법무사는 "나이 많은 법무사 · 변호사들이 브로커들에게 자격증을 빌려주는 것이 관행처럼 돼버렸다"며 "서류에는 법무사 도장이 찍히기 때문에 알아채기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파산 신청서를 읽다보면 몇 시간 전 다른 신청서에서 봤던 구구절절한 이야기가 그대로 등장하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말했다.

파산부의 다른 판사는 지난해 11월 파산선고를 받은 한 채무자의 신용카드 사용 목록을 보다가 선고받기 9개월 전 신용카드로 백화점에서 1179만원을 결제한 사실을 발견해 신청을 기각한 적도 있다. 이 판사는 "갖고 있는 부동산을 숨기거나 가짜 사채 채용증을 만들어 파산 선고를 받았다가 덜미를 잡혀 면책 허가를 받지 못하는 이들이 꽤 있다"고 설명했다.

◆법정 밖 합의 유도 등 제도 보완해야

전문가들은 브로커가 기승을 부리는 원인을 우선 신청서류 작업의 어려움에서 찾는다. 정순호 신용회복위원회 제도기획팀장은 "법률지식이 상당해야 파산신청서와 첨부서류를 작성할 수 있게끔 돼 있다"며 "파산신청 서류 작성을 도와줄 수 있는 서비스가 다양하게 개발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법원에서 파산절차를 밟기 전 검증된 기관을 통해 채무자와 채권자가 채무를 조정하는 단계를 거치는 외국 사례도 참조할 만하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