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ONG KOREA] 1부·(10) 변변한 소프트웨어 없는 IT코리아, 아이폰 한방에 흔들리다
소프트웨어(SW) 관련 중소기업 간부 A씨는 공무원들과 대기업 관계자들을 '큰 형님들'이라고 부른다. 그는 "소위 말하는 '갑을(甲乙)' 관계에서 '을'은커녕 '정(갑-을-병-정)'일 뿐"이라며 "어떤 SW 정책이 나와도 바뀌는 건 없다"고 자조했다. 정부나 공공기관 등이 용역을 발주하면 대기업 계열 IT서비스 업체들이 이를 수주하고, 다시 중소 SW업체에 재하청하는 뿌리깊은 거래관행이 SW업체들을 황폐화시킨 지 오래됐다는 지적이다.

◆애플의 저력은 SW

국내 SW 시장은 지난 5년간 사실상 정체 상태였다는 평가다. SW는 '공짜'라는 인식과 협소한 내수 시장, 불합리한 거래구조가 원인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특히 대기업 계열 소수 IT서비스 업체들의 역량은 어느 정도 성장했으나, 금융 · IT컨설팅 · 임베디드 SW 등에서 경쟁력은 여전히 미흡한 실정이다. IT산업 전체를 뒤흔든 아이폰도 따지고 보면 SW 혁명에서 비롯됐다.

추현승 성균관대 인터랙션사이언스학과 교수는 "국내 IT 관련 대기업들이 애플 한방에 갔던 이유는 바로 소프트웨어"라며 "사회 저변에 깔린 소프트웨어 무시 풍조가 이 같은 결과를 가져왔다"고 분석했다.

초창기 소프트웨어는 하드웨어의 부속물로 인식돼 단순제어 및 연산 기능 등만을 수행했다. 그러나 이제는 자동차 조선 항공 등 제조업뿐 아니라 바이오 · 의료, 에너지 · 환경 등과 연관돼 단순히 정보산업 차원이 아닌 산업 전반에 투입되는 '융합산업'으로 진화하고 있다.

삼성전자 LG전자 등 대기업이 NHN 등 거대 인터넷기업이나 중소 SW기업으로부터 인력 충원에 여념이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영화 아바타는 'GPGPU'라는 3D 전문 컴퓨팅 기술을 활용해 기존 방식보다 100배나 빠른 속도로 영화를 제작, 환상적인 장면을 선사하며 20억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산업기술진흥협회에 따르면 소프트웨어 컴퓨팅 기술이 핵심인 게놈정보처리기술로 창출될 맞춤형 의료서비스 시장은 세계적으로 209조원대에 이른다. 김성수 정보통신산업진흥원 수석연구원은 "경제와 산업을 새롭게 디자인하는 도구로서 소프트웨어의 부가가치는 이미 하드웨어를 추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SW 산업 체질을 개선해야

국내 SW산업에 투입되는 R&D 투자규모는 민간과 정부를 합해 2008년 기준 1조7000억원 선이다. 같은 해 마이크로소프트(MS)의 투자규모는 6조6000억원, 오라클은 2조원이었다. 한 국가의 투자액이 글로벌 기업 한 개에도 못 미치는 셈이다. 국내 SW 기업들 가운데 국제소프트웨어품질기준(CMMI) 인증을 획득한 곳은 지난해 3월 기준으로 70개.중국 929개, 미국 731개, 인도 274개에 비해 턱없이 적다. 정보통신산업진흥원에 따르면 패키지 SW 중에서도 시스템 SW는 선진 기술력(100점) 대비 83점 수준으로 가장 큰 기술격차를 보이고 있다.

지식경제부는 최근 시스템 SW 육성 정책을 내놓고 SW 지원 예산을 지난해 1333억원에서 올해 2142억원으로 대폭 늘렸다고 발표했다. 이를 통해 '월드 베스트 SW' 를 만들고 'SW 마에스트로'를 육성한다는 등 다양한 대책을 추진하겠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산업 자체의 기반과 체질을 개선하는 방식이 아닌 단순 지원책의 반복으로는 SW 산업은 절대 정상화될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를테면 IT서비스는 촉박한 구축기간과 내수중심 전략,대기업 계열사 간 거래 등 관행으로 국제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임베디드 SW 개발환경이 더없이 열악하다는 점도 문제다. 김성수 연구원은 "용역개발에 주력하는 국내 임베디드 SW 기업들은 상당수가 영세하고 연구인력이 부족하다"며 "그러다보니 운영체제(OS)나 기반기술에 접근하지 못하고 품질 · 공정관리를 체계화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한 하드웨어와 IT인프라의 강점을 전혀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와 출연연구소, 대기업 · 중소기업 간 개방형 협력체제(오픈이노베이션)를 구축하는 일이 가장 시급하다는 의견도 있다. 안철수 KAIST 석좌교수는 "대기업들이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하며 SW 인력을 대규모로 빼내가는 것은 대단히 큰 문제"라며 "단기적인 목표에 급급해 SW 생태계를 망치지 말고 장기적인 시각으로 상생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