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칼럼] 워런 버핏, 또 다른 진실
그가 위대한 투자가라는 것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44년 동안의 수익률이 연평균 20.3%다. 그 누가 버핏과의 점심값을 아까워하겠는가. 그러나 여기서 멈추는 것이 좋겠다. 그가 지배하는 벅셔해서웨이는 50개가 넘는 자회사와 손자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지금도 왕성하게 새로운 회사를 인수하고 있다. 이 긴 명단에는 초콜릿 회사에서부터 물류 보석 보험 건축 목재 음식료 가구회사까지 포함돼 있다. 최근에는 화학회사인 러브리졸을 인수했다. 한국서는 지탄해 마지 않는 문어발 중에서도 무차별적인 다업종 문어발이다.

그는 정주영이나 이병철처럼 결코 맨 땅에서 창업하지 않았다. 우리가 애덤스미스의 정의를 존중한다면 그는 투기꾼일 뿐 기업가는 아니다. 모기업인 벅셔해서웨이부터가 다른 사람에게서 인수 · 합병(M&A)한 회사다. 그룹사 중에는 상속세를 내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기업을 처분할 때 냉큼냉큼 사들인 기업이 많다. 그래서 그의 사업에는 상속세가 필시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의 보험회사는 상속세를 내거나 회피하기 위한 보험상품을 많이 팔고 있다. 상속세의 존재는 장사 밑천이기도 한 것이다. 버핏이 상속세 폐지에 반기를 드는 것에는 이런 이유도 없지는 않을 테다.

한국에서는 보험회사가 일반 기업을 자회사로 가질 수 없다. 삼성생명이 바로 이 조항 때문에 골머리를 썩여왔고 금산법에 걸려 비난을 받아왔다. 그러나 버핏에겐 그런 고민이 없다. 벅셔해서웨이 본사가 있는 네브래스카주에는 그런 규제가 아예 없다. 버핏이 레버리지가 용이한 보험지주를 모회사로 갖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그를 거부(巨富)이면서 동시에 검소하고 청빈하다고 생각한다. 상속세 주장에다 기부 운동까지 벌이고 있으니 지상의 천사다. 국내 좌파들은 입만 열면 버핏을 끌어들이고 언론도 그렇다. '버핏을 봐라!'는 것은 한국 기업가들을 욕할 때 말머리에 붙이는 수사학이다. 그러나 조심하시라.이 지점에서 무식한 찬사는 그만두는 것이 좋겠다.

환상을 깨는 것은 괴로운 일이지만 진실에 직면하는 것에는 약간의 용기가 필요하다. 지난주 한국에 왔을 때는 이명박 대통령도 꽤나 감명을 받은 모양이다. '사랑하는 아들에게'라고 시작하는 버핏의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져 있다. "내가 매년 너의 재단에 기부하는 재산이 상속세나 증여세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법적인 조치를 다하라"고 말이다. 이 같은 다짐은 빌게이츠 재단에 거액을 기부하는 약정서에도 그대로 들어있다. 굳이 기부금액을 내역별로 자세히 설명할 까닭이 없다. 상속세를 낼 수 없다는 것은 언제나 버핏의 확고한 입장이다. 그는 벅셔해서웨이 A주식을 갖고 있다. 일반주주는 B주식이다. A주식은 1대 1500의 비율로 B주식으로 전환되지만 그 반대는 안된다. 의결권은 무려 1만 대 1로 더 벌어진다. 소위 차등의결권이다. 그래서 버핏은 상속 과정에서 흔히 발생하는 경영권 공격을 받을 이유도 전혀 없다. 그의 부인과 아들,딸들은 모두 자선재단을 운영한다. 이들 재단에 기부하면서 기업지배권은 세금 한푼 안내고 자식에게 상속된다.

버핏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문제는 그를 천사라고 생각하는 한국인들이다. 한국 기업주를 욕할 때는 버핏을 끌어와 요긴하게 써먹는다. 역사적 투자가라는 호칭도 가만히 생각해보면 "글쎄~"다. 정주영 회장이나 이병철 회장의 40년 투자수익률은 버핏을 간단하게 제압한다. 위대한 한국인 기업가를 제쳐놓고 버핏에 몰입하는 한국인은 참 이상하다. 버핏의 부친은 하워드 H 버핏이다. 금본위제를 주장했던 시장자유주의자이며 네브래스카에서 공화당 4선 의원이었다. 지금 오바마의 민주당 지지에 바쁜 아들과는 사뭇 다르다. 그 지지에도 계산속이 있을 것이다.

정규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