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만 무성했던 '스마트그리드' 인프라 구축사업이 마침내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한국전력은 지난해 55만개의 전자식 전력량계(스마트미터)를 발주했고 오는 4월 75만개에 대한 추가 입찰 공고를 낸다. 전력정보 전송 통신망인 원격검침인프라(AMI)도 함께다. 제주도 실증단지 1단계 사업이 5월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본격 상용화에 나선 것.2020년까지 1조4700억원을 투자해 전국 단독주택 및 저압 공동주택(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 이하 아파트) 1800만가구에 스마트미터 공급과 AMI 구축을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마침 지난 7일 '스마트그리드 촉진법'도 국회 지식경제위원회를 통과하면서 시장 개화(開花)를 촉진하고 있다.

◆정부 인프라 확산에 강한 의지

한전이 이번에 투자하는 사업은 스마트그리드의 기본 인프라인 '스마트 플레이스'부문이다. 가정에 스마트미터를 설치해 소비자는 실시간으로 사용 중인 전력량과 가격을 볼 수 있고 한전은 전기 사용에 대한 데이터를 얻을 수 있게 된다. 단순히 전기사용량에 대한 양방향 모니터링이 가능한 수준이다. 그러나 미국의 사례를 보면 이것만으로도 20% 가까운 전기 절약 효과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정부는 지난 2월 스마트그리드 확산을 위한 필수 요건인 '실시간 요금제(시간대별로 다른 전기요금을 부과하는 것)' 시범운영 방침을 발표했다. 홍혁 스마트그리드협회 기획실장은 "정부가 법과 제도 정비,발주를 동시에 진행하면서 인프라 조기 구축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단 1조4700억원+α

앞으로 10년간 집행되는 1조4700억원 중 절반은 스마트미터,나머지는 AMI시스템에 투자된다. 스마트미터 시장엔 LS산전,일진전기를 비롯한 20여개 업체가 포진해 있다. 기술 수준이 대동소이하고 한전도 저가 입찰 원칙을 밝히면서 치열한 가격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엔 피에스텍,옴니시스템,선도전기 등 중소기업들이 물량을 가져갔다. AMI 분야에서는 한전 자회사인 한전KDN과 중소기업인 누리텔레콤이 격돌하고 있다. 한전KDN은 기존 전력망을 그대로 통신망으로 활용하는 시스템을 앞세워 1차 수주를 따냈다. 누리텔레콤은 12개국에 수출한 경험을 바탕으로 수주전에 나서고 있다.

한전은 현재 민간이 관리하고 있는 고압 공동주택(5층 이상의 아파트)의 전력량계를 인수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인수가 완료된다면 약 650만가구에 대한 추가 스마트미터 교체 시장이 열린다.

스마트 플레이스 이후의 인프라 구축에 대해서는 아직 세부 투자 계획이 잡히지 않았다. 대략적으로 정부는 2030년까지 27조5000억원을 투자한다고 밝힌 바 있다. 안응수 지식경제부 스마트그리드팀 사무관은 "제주 실증단지 2단계가 마무리되는 2013년 초께 구체적인 투자 아이템과 금액 등이 나올 예정"이라고 말했다.


◆ 스마트그리드

기존의 전력망에 정보기술(IT)을 접목해 전력 공급자와 소비자가 양방향으로 실시간 정보를 교환함으로써 에너지 효율을 최적화하는 차세대 지능형 전력망.전기 생산 방식을 풍력 ·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하거나 전기자동차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도 '스마트그리드'의 일환이다.



남윤선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