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 한국 교민 30여명 행방 "잘 모르겠다"
지진 참상에 여진 계속.. "복구는 엄두도 못내"

13일 오후 5시께 연합뉴스 취재진이 도착한 이와테(岩手) 현 남동부의 항구도시 오후나토(大船渡)는 말 그대로 폐허로 변해 있었다.

진도 6.5도의 지진과 최고 10m에 달하는 해일이 할퀴고간 도시 곳곳은 말그대로 '처참한 몰골'이었다.

해일은 항구로 흐르는 작은 강을 따라 오후나토 시 깊숙한 곳까지 들어왔다.

5~6m 높이의 둑은 무서운 기세의 해일을 막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항구에서 약 3㎞ 떨어진 사노바시 다리까지 집어삼킨 바닷물은 교각의 철제 난간을 휘어진 엿가락처럼 만들어버리고 빠져나갔다.

교각 위의 아스팔트는 말라 비틀어진 누룽지처럼 떼어져 다리 주변에 나뒹굴었다.

도로는 온통 진흙으로 뒤덮여 질척였고 건물은 온전한 것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한 편의점 건물은 외벽이 모두 사라진 채 골조만 앙상히 남아있었고 반쯤 부서진 집이 해일에 떠내려와 도로 한가운데를 막고 서있기도 했다.

용도를 알아볼 수 없는 한 공장 건물은 불에 완전히 타버렸고 건물 주변에서 여전히 매캐한 냄새가 피어올랐다.

해일에 휩쓸린 자동차 수십 대는 종잇장처럼 구겨져 뒤집히거나 건물 옥상 또는 둑 위 등 제자리가 아닌 곳에 쳐박혔다.

냉장창고와 수산물 가공공장도 파손돼 보관 중이던 생선 수백 마리가 거리 곳곳에 쏟아졌다.

사람들은 비릿한 생선 썩는 냄새에 코를 막았지만 갈매기 떼는 뜻밖의 행운을 만났다는듯 주린 배를 채웠다.

오후나토 시 당국은 항구 인근 시민문화회관에 피난소를 차렸다.

이곳에 모여든 이재민 300여명은 시에서 나눠준 주먹밥과 국으로 끼니를 때웠다.

시민회관은 자체 발전기를 사용해 전력을 생산했으나 오후나토 시 전체에 전기공급이 끊긴 탓에 해가 지자 주위는 칠흑같은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다.

휴대전화와 인터넷 등 유·무선 통신망 역시 복구되지 않아 이재민들은 시민회관 현관에 설치된 대형 게시판에 메모를 붙이며 지인의 안부를 확인하고 있었다.

한 이재민은 "갑작스럽게 당한 일이라 지금도 정신이 없다.

피해가 너무 커 복구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며 울상을 지었다.

취재진이 피난소를 취재하는 동안에도 여진이 발생해 시민회관 전체가 약 5초간 흔들렸다.

시끄럽던 피난소에 한순간 정적이 흘렀으며 이재민들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한편, 한국 외교부는 오후나토 시에서 교민 30명이 실종됐다고 밝혔으나 피난소 관계자는 "실종자 중 한국인이 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잘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시 경찰에 따르면 현재까지 확인된 오후나토 시의 실종자 수는 중학생 23명을 포함한 48명이지만 이곳의 마쓰자키(松崎) 마을이 통째로 해일에 휩쓸리는 등 곳곳에서 심각한 피해를 당한 탓에 사망자와 실종자 수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오후나토 시는 1960년 칠레 대지진 때 태평양을 건너온 지진해일에 53명의 사망자를 냈으며 1896년과 1933년에도 지진해일로 각각 2만7천여명, 1천522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등 지진해일과 관련해 비극적인 역사를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오후나토<일본>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kind3@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