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화 명작 기행] 빛과 그림자로 나눈 도시의 아침 풍경…침묵의 소리를 듣다
평생 40점의 작품밖에 그리지 않은 화가,그러나 렘브란트와 함께 네덜란드 바로크 미술의 쌍벽을 이룬 화가. 북구의 '모나리자'로 통하는 '진주 귀고리 소녀'를 그린 주인공.마흔 셋이라는 짧은 생애 동안 자식을 열한 명이나 둔 사내.

얀 베르메르(1632~1675)의 신상을 들춰보면 튀는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풍경화만 따지면 렘브란트를 제치고 1인자라고 해도 태클 걸 사람은 별로 없다. 놀라운 사실은 풍경화는 겨우 두 점만 그렸다는 사실이다. 그는 마치 자폐증 환자처럼 부르주아계층의 실내 풍속도만 붙들고 늘어졌다. 그 중 '델프트 풍경'은 네덜란드 풍경화의 백미로 꼽힌다. 대체 어떤 풍경화이기에 화가를 영예의전당 상석에 앉혀놓은 것일까.

베르메르는 1632년 델프트에서 직조공이자 여인숙업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화상(그림매매인)을 겸했는데 덕분에 아들인 베르메르는 어려서부터 델프트의 유명 화가들과 친분을 나눌 수 있었다. 그가 누구에게 회화수업을 받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1652년 아버지의 임종 후 뒤를 이어 화상의 길을 걷게 된 그는 이듬해 부잣집 딸 카탈리나 볼른스와 결혼한다.

경제적 사정이 여의치 않았던 그는 자존심을 반납하고 장모집에 들어가 눈칫밥을 먹기 시작한다. 더부살이 주제에 그림에 몰두하기는 어려운 노릇이었다. 게다가 화가라는 직업으로는 점점 늘어만 가는 아이들을 양육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가 많은 작품을 남기지 못한 것은 화상노릇하며 틈틈이 시간을 쪼개야 하는 팍팍한 환경에 기인한 것이다.

그나마 식구들이 많다 보니 집안은 늘 소란스러워 차분히 작업에 몰두하기도 어려웠다. 한술 더 떠 불량기 많은 처남이 칼을 들고 들어와 난동을 부리는 바람에 베르메르는 좌불안석이었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그가 계속 붓을 들 수 있었던 것은 델프트의 부유한 징세관이자 미술품 수집가인 반 루이벤이 지속적으로 그림을 주문해줬기 때문이었다.

베르메르가 일상적 업무를 끝내고서야 가질 수 있었던 그 짧은 작업 시간은 현실의 고통에서 벗어날 유일한 도피처였는지도 모른다. 그러한 의도가 반영된 것일까. 그의 그림은 그가 누릴 수 없었던 차분함과 명상적 분위기가 두드러진다. 살며시 고개를 돌린 '진주 귀고리 소녀'의 고요한 눈빛과 '우유 따르는 여인'의 정적인 분위기는 그가 꿈꾸던 소박한 세계처럼 보인다. 화필을 잡는 순간 현실의 격렬한 동요는 사라지고 그의 마음은 침묵의 위로를 받았다. 그림은 그의 고단한 삶을 지탱해주는 유일한 지주였던 것이다.

그러나 운명의 여신은 화가에게 그런 소박한 꿈조차 오래 허락하지 않았다. 1672년 이웃나라들과의 잇단 전쟁으로 불거진 네덜란드의 경제 위기로 미술시장은 얼어붙었고 베르메르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여기저기 손을 벌려야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든든한 후원자인 반 루이벤이 갑작스럽게 타계해 그림 주문마저 끊어지고 만다.

결정타를 날린 것은 장모였다. 전란으로 상당수의 재산을 잃은 장모는 사위에게 돈을 꿔오라고 닦달을 해댔다. 장모 덕을 보며 살아온 그로선 거절할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결국 그는 1675년 주체할 수 없는 부담감으로 병을 얻어 홀연히 세상을 떠났다.

명작 '델프트 풍경'에서 그런 착잡한 개인사의 그늘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 작품이 한창 희망으로 가득 찬 20대에 그려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거점 중 하나였던 델프트는 본래 직조업으로 번영했던 도시였는데 그림이 그려진 당시 새롭게 유럽 도자기 산업의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었다.

작품은 하루의 일상이 시작되기 직전 델프트의 한가로운 풍경을 담은 것이다. 시가지 가운데의 아치형 다리 오른쪽이 로테르담 문이고 그 앞으로 삐져나온 두 개의 망루형 입구 우측에는 배가 드나들 때마다 열리는 도개교가 보인다. 로테르담 문 뒤로는 아름다운 신교회의 첨탑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아치형 다리 왼쪽에는 쉬담 문이 있고 그 왼쪽에는 두 개의 첨탑이 보인다. 왼편의 작은 탑이 유서 깊은 구교회의 첨탑이다.

이 그림은 운하 건너편에서 바라본 사실적인 풍경인데 실제로는 화가가 드라마틱하게 약간의 변형을 가한 것이다. 예를 들면 로테르담 문과 도개교는 전체적인 경관이 잘 보이게끔 약간 방향을 우측으로 틀어서 그린 것이다.

혹자는 이 작품이 뭐 그리 대단하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얼핏 보기엔 그렇다.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구름 사이로 쏟아지는 빛의 궤적을 따라 시선을 옮겨보라.뜻밖의 표현방식이 마음을 흥분시킬지도 모른다. 종전의 풍경화는 전경이 밝고,배경이 흐릿하게 묘사되게 마련이었다. 이상하게도 이 그림에선 거꾸로 저 멀리 배경의 건물들이 훨씬 밝고 선명하게 그려져 있다.

바로 구름이 빚어낸 자연의 경이다. 전경의 하늘은 구름에 가려 빛이 차단된 상태라 그늘이 질 수밖에 없지만 빛이 쏟아지는 뒤편의 건물들은 금빛으로 밝게 빛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가까운 경치는 선명하고 먼 배경은 흐릿해야 한다는 풍경화의 상투적이고도 오랜 관례를 뒤엎는 것이었다. 대상을 꼼꼼히 관찰하고 그 속에서 침묵의 소리를 들으려 했던 베르메르의 사실정신이 풍경화의 새로운 지평을 연 것이다.

신비한 빛이 드리워진 도시의 풍경은 종교적 경건함마저 자아낸다. 거기서 우리는 화가가 그토록 갈구했던 고요한 마음의 빛을 본다.

정석범 < 미술사학 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