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정운찬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이 실수를 한 것 같다. 대기업의 이익을 납품업체와 나누자는 것은 오랫동안 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쳤던 경제학자로서 할 이야기가 아니었다. 더 큰 실수는 "대 · 중소기업 간 초과이익공유제는 대기업의 이윤을 빼앗아 중소기업에 나눠주자는 반시장적,또는 사회주의적 분배정책이 아니다"는 주장이다. 차라리 반시장적인 것이긴 하지만 중소기업을 돕기 위한 방법이라고 했다면 그것은 철학 혹은 이념의 문제였겠지만,반시장적인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것은 경제학적 기본지식의 문제가 된다.

정 위원장이 주장하는 초과이익공유제는 잉여가치론의 변형이다. 마르크스의 잉여가치론은 어떤 상품의 가치는 그 상품을 생산하는 데 투여된 노동시간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이 실제로 생산한 가치보다 적은 임금,즉 생존비 수준의 임금을 주는데,노동자들에게 생존비 수준의 임금을 주고 남은 부분이 바로 '잉여가치'라는 것이다. 잉여가치론에 따른다면 기업의 이윤은 노동자들을 착취한 결과인 만큼 이윤은 생산에 기여한 노동자들과 공유해야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초과이익공유제는 대기업의 많은 이윤은 협력업체의 납품가를 후려친 결과라는 인식 아래 나온 것이다. 따라서 초과이익공유제는 결국 마르크스의 잉여가치론과 그 맥을 같이한다.

이제 이념을 떠나 구체적으로 초과이익공유제가 왜 반시장적인 것인지를 보도록 하자.단순히 회계 상으로 보면 이윤은 수입에서 비용을 제하고 남은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실제로는 거기에 매우 복잡한 경제활동이 내포돼 있다. 초과이익공유제는 이러한 사실을 완전 무시하고 있다.

기업의 이윤에는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새로운 생산방식,새로운 경영방식,제품의 디자인,서비스 및 홍보 방법 등에 대한 연구와 혁신활동의 결과가 포함돼 있다. 이 부분은 납품업체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뿐만 아니라 생산에는 협력업체와 무관한 두 가지 위험이 있다. 하나는 대기위험이고 다른 하나는 가치하락위험이다.

모든 생산과정은 완결될 때까지 시간이 걸린다. 협력업체는 부품을 납품하고 바로 대금을 받지만 부품을 이용해 제품을 만드는 대기업은 제품이 팔려야만 대가를 받게 된다. 여기에는 위험이 따른다. 이것이 대기업이 갖는 대기위험이다.

그리고 생산된 재화의 가치가 그것을 생산하는 데 사용된 자원의 가치보다 낮은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왜냐하면 생산된 가치는 최종적으로 소비자가 결정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많은 비용을 들였다해도 소비자가 제품에 낮은 가치를 부여한다면 제품을 팔아 얻는 수입은 들어간 비용보다 낮을 수밖에 없다. 결국 협력업체는 납품가를 받지만 대기업은 완제품이 성공할 경우에만 지불받는 위험을 진다.

그러나 협력업체는 이런 위험을 지지 않는다. 따라서 결과에 대한 책임도 없는 협력업체가 이익을 공유한다는 것은 결국 대기업의 재산을 마음대로 처분하는 격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익공유제는 재산권 침해이며 반시장적이다.

한편 초과이익공유제가 실시되면 대기업은 그것을 피해가는 방법들을 찾을 것이다. 예를 들어 부품업체를 기업 조직 내에 두거나,협력업체를 해외로 옮기려 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국내 부품업체들이다. 이로 인해 실업이 증가하는 등 국가경제 전체에도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낳게 된다.

초과이익공유제는 반시장적인 것으로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모두에 해를 끼쳐 오히려 동반성장을 방해할 것이다. 초과이익공유제는 결코 실시돼서는 안 된다.

안재욱 < 경희대 대학원장·경제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