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정무위원회가 최근 통과시킨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방판법)' 개정안은 직접판매와 다단계의 중간 단계에 있는 기업에 대해 '후원방문판매'라는 개념을 도입,규제 수위를 높이겠다는 게 핵심이다. 자본금 규모와 수당,상품 가격,판매원과 임직원 자격 등에 각종 규제가 가해지고 이를 어긴 기업은 강력한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 규제 강도는 오히려 다단계 업체보다 강해졌다. 판매대리점들도 공제조합에 가입해야 하고 전산 설비를 갖춰야 하는 등의 부담을 떠안게 된다.

업계는 개정안이 발효될 경우 화장품 학습지 건강식품 등 2만여개 기업 및 대리점과 판매인 50여만명이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했다.

한 화장품 대리점 관계자는 "가뜩이나 영세한 화장품 판매원들에게 폐업하라는 얘기나 다름없다"며 불만을 터트렸다. 정부의 입장은 분명하다.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그동안 일부 방문판매 업체들이 관행적으로 다단계 방식의 영업을 해 왔다"며 "이를 근절하겠다는 게 개정안의 취지"라고 말했다.


◆방문판매냐,다단계냐

방문판매와 다단계를 구분하는 기준은 그동안 공정위와 해당 업체 간의 해묵은 논쟁거리였다. 판매원 A가 하위 판매원 B를 두고,B가 다시 하위 판매원 C를 두는 등의 3단계 이상 판매원층을 구성하고 있다면 이를 방문판매로 봐야 하느냐,다단계 기업으로 봐야 하느냐가 쟁점이었다. 현행 방판법은 후원수당(업체가 판매원에게 주는 각종 수당)의 범위에 따라 이를 결정한다. 방판업체는 하위 판매원의 판매 성과가 바로 윗사람에게만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A,B,C의 3단계 하위 구조를 띠고 있더라도 C의 판매 성과로 C와 B의 수당만 늘어난다면 방판에 해당된다. 다단계 판매는 C가 판매 성과를 거둘 경우 A,B,C 모두에 성과가 지급된다. 마찬가지로 C의 하위 판매원인 D가 판매 성과를 거두면 A,B,C,D에 모두 수당이 지급된다. 이렇다 보니 일부 다단계 업체의 경우 하위 판매원을 늘리는 게 급선무가 되고 대박을 터트릴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판매원들이 물건을 잔뜩 떠안는 부작용이 속출하기도 했다. 물건 가격도 상대적으로 고가인 경우가 많다.

방판법 개정안은 방판기업이더라도 판매층이 3단계를 넘어서면 판매 성과 지급 범위와 상관없이 '후원방판'으로 인식해 제재를 가하겠다는 내용이다. 업체들은 "개인사업자들이 판매를 극대화하기 위해,시간을 아끼기 위해 하위 판매자들을 두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하지만 다단계와 달리 하위 판매자를 둬서 생기는 부작용은 거의 없는데도 공정위가 일부 미등록 다단계를 문제삼아 업계 전체를 죽이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다단계보다 규제 강도 높다" 업계 반발

후원방판 업체들은 다단계 업체와 같은 규제를 받게 된다. 신고제에서 등록제로 바뀌고 160만원 초과 제품의 판매도 금지된다. 자동차,전자제품 분야의 방문판매도 없어지게 됐다. 청약 철회 기간은 현행 14일에서 3개월로 늘어난다.

다단계에 없는 규제도 생겨났다. 전체 매출의 50%가 최종소비자에서 발생해야 한다는 이른바 '옴니트리션 기준'이 적용되는 것.또 판매원에게 제공하는 각종 수당 지급액이 제품 매출의 38% 이내로 제한된다. 업체들 입장에서 성과가 높은 판매원에 대한 추가 인센티브 등의 지급이 어려워진다. 코리아나 풀무원 등 일부 화장품 업체들은 판매 방식까지 바꿔야 한다.

판매원들이 받는 부담은 더 크다. 3개월 매출의 최대 40%(최소 1억원)를 공제조합에 납부해야 한다. 업체들이 가장 반발하는 부분이다. 또 매월 50% 이상을 소비자에게 판매했음을 입증하기 위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고 판매 책임을 입증하기 위한 통화녹음 설비 등도 갖춰야 한다. 한 화장품 판매원은 "월 평균 매출이 100만~200만원 안팎에 머무르는 상황에서 이 같은 규제를 도입하는 건 폐업하라는 얘기나 다름없다"며 불만을 터트렸다.

고경봉/안상미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