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일본을 '피터 드러커 열풍'에 빠져 들게 만든 책이 있다. 직장인에서부터 가정주부 학생에 이르기까지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인 드러커의 경영학에 푹 빠지게 한 책은 이름도 유별난 '만약 고교 야구부의 여자 매니저가 드러커의 매니지먼트를 읽었다면'이다.

책 이름 중 만약이란 뜻의 일본어인 '모시(もし)'와 드러커의 일본식 발음인 '도라(ドラ)'를 합쳐 '모시도라'란 약칭으로 더 알려진 이 책은 청춘 소설.

한 고등학교에서 야구부의 매니저(부 운영을 돕는 보조원)를 맡고 있는 가와시마 미나미란 여학생이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드러커의 '매니지먼트(management)'를 읽고,그의 경영 이론과 철학을 야구부 운영에 접목시켜 만년 꼴찌팀을 전국대회에 진출시킨다는 내용이다.

처음엔 드러커가 누군지 조차 몰랐던 야구부 선수들은 "기업(조직)의 존재 이유는 고객이고,기업의 목적은 시장을 창조하는 것"이란 드러커의 명언을 통해 자신들이 무엇을 위해 야구를 해야 하는지 사명감을 깨달아 가는 과정을 스토리로 엮었다.

이 책의 인기는 대단하다. 2009년 12월 발매 이후 지난 14일 현재 222만부(이 중 10만부는 전자북 판매)가 팔렸다. 이 책을 낸 다이아몬드사가 1913년 창립 이래 출판한 책 중 최고 기록이다. 지난해 일본의 베스트셀러였던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의 인기 소설 '1Q84 1권'(156만5000부)보다도 더 팔렸다.

일본의 공영방송 NHK가 이 책을 만화영화로 만들어 3월부터 방영을 준비하고 있을 정도다. 영화로도 제작돼 오는 6월 개봉된다. 이 책을 쓴 방송작가 출신의 이와사키 나쓰미(岩崎夏海 · 42 · 사진)를 만나 '왜 지금 피터 드러커인가'에 대해 들어봤다.

▼'모시도라'를 쓰게 된 경위가 궁금하다.

"5년 전 근무하던 회사의 사장이었던 유명 작사가 아키모토 야스시(秋元康)로부터 '여고생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기획해 보라'는 지시를 받았다. 당시 유행하던 외국소설 '다빈치코드'와 같은 이색적인 스토리를 만들고 싶어 여고생과 어울리지 않는 조합의 테마를 찾아다녔다. 그때 우연히 읽은 피터 드러커의 '매니지먼트'란 책에 깊은 감명을 받았는데,그 책에서 '매니저(manager)'란 말이 자주 나오는 데서 이 소설을 착안했다. 만약에 고교 야구부의 여학생 매니저가 드러커의 '매니지먼트'를 읽고,그것을 기초로 야구부를 매니지먼트해 나간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떠오른 것이다. "

▼작가는 경영학을 전공하지도 않았고,경영과는 거리가 먼 일을 해왔다. 드러커의 '매니지먼트'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

"5년 전 한 온라인 게임에 열중하고 있었다. 플레이어끼리 팀을 만들어 몬스터를 무찌르는 게임이었다. 내가 팀의 리더였는데,팀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아 골치를 썩고 있었다. 뭔가 참고가 되는 정보가 없을까 고민하고 있을 때 인터넷에서 "나는 피터 드러커의 책을 참고로 팀을 운영하고 있다"는 글을 읽었다. 당장 서점에 가서 '매니지먼트'를 사서 읽었는데 큰 감명을 받아 눈물까지 흘렸다. 그의 문장은 내가 좋아하는 문호 세르반테스나 빅토르 위고,마크 트웨인에 비견할 정도로 격조 높고,장엄했다. "

▼피터 드러커의 '매니지먼트'에서 특히 감명받은 부분은.

"매니저(경영자)로서의 자질을 언급한 부분이다. 최근엔 붙임성 있고,대인 관계가 좋은 사람을 훌륭한 매니저라고 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걸로 충분할 수 없다. 사실 잘나가는 조직에는 협력을 무시하고,대인 관계도 좋지 않은 독불장군의 보스가 있다. 이런 종류의 보스는 까다롭고 제멋대로이긴 하지만 누구보다도 많은 인재를 키워낸다. 부하들에게 인기 있는 사람보다 더 존경받는 경우도 있다. 늘 최고의 실적을 요구하고,자신도 최고의 실적을 낸다. 무엇이 올바른 것인가 만을 생각하고,누가 올바른가는 생각하지 않는다. 지적인 능력보다도 일에 대한 진지함을 더 평가한다. 이런 자질이 없다면 아무리 대인관계가 좋고,유능해도 매니저로는 실격이다. 후천적으로 얻을 수 없는 매니저의 자질을 꼽으라면 '진지함'이다. 피터 드러커가 이걸 강조한 부분에서 크게 감명 받았다. "

▼'모시도라'가 이렇게 히트할 줄 예상했나.

"사실 예상하고 책을 썼다. 처음부터 200만부까지는 팔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

▼'모시도라'가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현재 일본의 많은 사람들이 '매니지먼트'의 지식을 필요로 하고 있다. 그러나 드러커의 '매니지먼트'는 쉽게 접할 수 있는 책이 아니었다. 나는 매니지먼트의 지식 수요와 매니지먼트란 책의 사이에서 다리를 놓는 역할을 한 것이다. 그 다리가 '모시도라'라는 책이다. 그게 인기의 비결이라고 생각한다. "

▼이 책은 기업 경영자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큰 인기를 끌었다.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일반인 중 많은 사람들이 그동안 매니지먼트당하던 입장에서 매니지먼트해야 하는 입장으로 바뀐 게 큰 이유다. 기업 경영자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자기가 속한 조직과 일상 생활에서 매니지먼트의 지식을 활용하면 유용한 것이 많다. "

▼'모시도라'를 통해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드러커의 '매니지먼트'란 책은 정말로 재밌다는 사실이다. "

▼개인이나 조직이 '매니지먼트'란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인가.

"모든 게 고객으로부터 출발한다는 사실이다. 자신의,내가 속한 조직의 고객이 누구인지 파악하고,그들을 만족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경영의 기본 중 기본이다. 경영은 이기(利己)가 아니라 이타(利他)란 얘기다. "

▼드러커는 '매니지먼트'를 37년 전에 썼다. 이렇게 오래된 책이 여전히 경영에 유효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경영의 본질은 세월이 흘러도 바뀌지 않는다. 매니지먼트엔 경영의 변함없는 기본과 원칙이 담겨 있다. "

▼최근 삼성전자 등 한국 기업들이 일본에서 주목받고 있다. 한국 기업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하나.

"자신이 강한 분야에 집중해 뛰어난 성과를 내고 있는 기업들이란 인상을 갖고 있다. "

▼한국의 경영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한국도 일본과 비슷한 길을 걸을 것으로 본다. 경제가 무한하게 계속 성장할 수만은 없다. 반드시 한계를 맞게 된다. 그때는 '성장하지 않는 가운데 얼마나 행복하고,풍요롭게 살 수 있을까'가 과제가 된다. 그런 과제에 빨리 대응하는 기업이 앞으로 살아남을 것이다. "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


이와사키 나쓰미는

이와사키 나쓰미는 미대 출신의 전업 작가다. 도쿄 예술대학 건축학과를 졸업한 뒤 작사가 아키모토 야스시 밑에서 방송작가 일을 시작했다. 그동안 수많은 TV 프로그램 제작에 참가했고,일본의 여성 아이돌그룹 AKB48의 프로듀서도 맡았다. 현재는 전업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2009년 12월 출판한 '만약 고교 야구부의 여자 매니저가 드러커의 매니지먼트를 읽었다면'은 그가 쓴 첫 번째 소설이다. 첫 작품부터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셈이다. 작년 말엔 두 번째 소설인 '고시엔(일본의 전국 고교야구대회)만이 고교 야구는 아니다'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