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장경(大藏經)은 짝퉁이다. "

고려대장경연구소장을 지낸 사람이 이렇게 말한다. 고려 현종 2년인 1011년 초조대장경 조판이 시작된 지 1000년이 되는 해를 맞아 대장경 이야기를 풀어놓은 책 《대장경,천년의 지혜를 담은 그릇》(오윤희 지음,불광출판사,400쪽,2만원)을 통해서다. 저자를 만나 그 까닭을 물었다.

"고려대장경 1000년의 해를 맞아 좋은 이야기들을 많이 합니다. 하지만 자랑을 하더라도 제대로 알고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송나라의 개보대장경을 그대로 베껴 고려 현종 때 새긴 것이 초조대장경의 첫 번째 버전(v.1.0)입니다. 해인사에 있는 팔만대장경,즉 재조대장경은 이 초조본을 베낀 것입니다. 그러니 짝퉁이죠."

저자는 또 대장경에 관한 편견과 오해도 바로잡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대장경의 글자들이 마치 한 사람이 쓴 것처럼 정연하다거나,세계에서 가장 오랜 목판 인쇄물이라거나,단 한 자의 오자도 없다거나 하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다. 재조대장경에는 《교정별록》이라고 해서 교정을 한 기록이 남아 있는데 그 책에서조차 오자가 여럿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저자가 고려대장경을 폄하하는 건 결코 아니다.

"고려대장경은 5000만자가 넘는 방대한 규모의 문헌 집성입니다. 내용을 따져보면 고려대장경은 고려만의 것은 아닙니다. 그 안에 담긴 문헌들은 인도에서 시작해 서역의 여러 나라,여러 민족들이 번역하고 유통시킨 것이며,중국 장안에서 집대성돼 대장경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후에도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쌓이고 쌓여 형성된 것이죠.그러니 대장경은 아시아인,세계인의 공동 창작물입니다. 우리가 자랑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선조들이 이런 대장경을 더 잘 포장해 세상에 다시 선물한 것이고,그 기나긴 종교적 · 문화적 · 지적 · 기술적 우호와 교류의 역사에 우리가 동참했다는 사실이죠."

저자는 그래서 "대장경은 불교경전이라고만 할 수 없으며,동아시아 지식의 흐름이 녹아들어 있는 큰 '그릇'"이라고 강조한다. 실제로 대장경에는 석가모니의 말씀을 기록한 경장,계율을 모은 율장,불제자들의 논설을 모은 논장 등 삼장 외에도 그리스 철학과 불교철학의 논쟁 내용,기독교의 일파인 네스토리우스파의 성경 등 다른 종교의 성전까지 담겨 있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해인사 고려대장경의 교정 이야기다. 해인사 고려대장경은 초조대장경과 그 저본인 송나라 개보대장경,단본(거란본)대장경을 나란히 놓고 비교해 만든 교정대장경이다. 재조대장경의 저본으로 사용한 북송본,국전본,국후본,거란본에다 여러 종의 필사본과 주석서까지 일일이 대조했다. 저자는 "13세기 고려에서 그것도 전쟁통에 이런 일을 했다는 건 실로 경이로운 일"이라고 말했다.

오 전 소장은 1980년대 말부터 고려대장경 전산화를 추진하고,디지털화 작업을 이끌어온 주역이다. 그는 "고려대장경이 조성된 시기는 목판인쇄술이 보급되던 매체 변화의 시기였다"며 "대장경 1000년의 해를 맞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디지털로 매체가 바뀌는 시기에 미래의 1000년을 준비하고 그 안에 우리만의 꿈이 아니라 인류 보편의 꿈과 가치를 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