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엔 관심없던 인텔 광고에 소녀시대가 나온 까닭은?
"소녀시대를 왜 기용했냐고요? 지금 30~40대인 분들은 '딩딩딩'하면 인텔 인사이드를 떠올리지만 지금은 그런 거 하면 SK텔레콤의 T로그인을 떠올리거든요. "

지난달 18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역도경기장에서 열린 인텔의 신제품 '2세대 코어 프로세서' 발표회장에는 아침부터 10~20대 청년들이 길게 줄을 섰다. 이들이 섭씨 영하 6도의 강추위를 무릅쓴 이유는 인기 아이돌 그룹 소녀시대의 공연을 보기 위해서였다. 인텔코리아는 자사 신제품의 광고 모델로 소녀시대를 기용,이날 발표회에서 광고용 테마송 '비주얼 드림'을 공개하고 블로거와 일반 인터넷 이용자 수백명을 초청했다.

◆소녀시대 뮤직비디오 조회 수 한 달 만에 500만건

소녀시대는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지역에서 인텔의 차세대 프로세서를 홍보하게 된다. 일반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별도의 모델을 써 대규모 제품 광고를 하는 경우는 전 세계적으로 드물었다. 인텔은 1991년부터 1998년까지 대규모 '인텔 인사이드' 마케팅 켐페인을 펼쳤지만 이른바 '스타 마케팅'과는 거리를 두었다. 이희성 인텔코리아 사장은 이날 "기술 분야에서 인텔이 리더십을 가져가고 있지만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며 "젊은 사용자들이 관심을 갖고 있고 차세대 프로세서의 비주얼한 이미지와 맞는 소녀시대가 '인더스트리 익사이트먼트(industry excitement)' 창출에 적합한 모델"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인텔의 소녀시대 마케팅은 단기간 내에 인텔의 신제품을 알리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인텔 광고 삽입곡으로 새로 작곡한 '비주얼 드림'의 경우 소녀시대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가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서 운영하는 공식 채널을 통해 재생된 건수만 310만건에 달한다. 인텔 자체 사이트,동영상 서비스 곰티비,공식 티저 영상 등을 합하면 조회 수는 500만건에 이른다. 특히 18일 공개 직후 48시간 이내에 조회 수 100만건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인텔 본사는 지난달 26일 유명 힙합 그룹 '블랙아이드피스' 멤버인 윌아이엠을 창조 · 혁신 담당 이사로 임명했다. 데보러 콘래드 인텔 마케팅 최고책임자는 "이번 인사는 엔터테인먼트와 기술의 융합을 고려한 것"이라며 "인텔은 새로운 형태의 소통과 엔터테인먼트를 수용해 전 세계 젊은이 문화를 적극 공략하는 혁신을 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힙합 · 영화 · 야구 등 다양한 방식으로 진화

IT기업들의 마케팅이 변화하고 있다. 우수한 성능을 알리는 데 초점이 맞춰졌던 이전의 마케팅 전략과 달리 소비자들의 감성에 호소하고 실생활에 밀착해 경험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 최근의 흐름이다. 특히 20~30대 젊은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한 제품들에서 이러한 전략을 실행하는 업체들이 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2월 자사 스마트폰 갤럭시S로 찍은 단편영화 '우유시대'를 공개했다. 방자전 음란서생 등으로 유명한 김대우 감독이 찍은 이 작품은 갤럭시탭 사이트(tabtaxi.com)와 삼성 앱스토어에서 350만건 정도가 다운로드됐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갤럭시S의 강점인 디스플레이를 잘 보여줄 수 있는 게 영화"라며 "모바일 기기로 사진과 동영상을 많이 찍어 공유하는 트렌드에 맞는 마케팅으로 앞으로 비슷한 시도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김정은의 초콜릿','개그콘서트' 등 젊은 층이 많이 보는 TV프로그램에 간접광고(PPL)를 하고 있다. 최근에는 김정은의 초콜릿에 출연한 가수 아이유가 갤럭시탭을 보고 "와 이거 그거잖아요. 좋은 거"라고 말하는 장면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국HP는 유명 가수 A씨를 광고모델로 기용키로 결정하고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다. 한국HP 관계자는 "제품과 서비스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았던 HP의 국내 브랜드 인지도를 끌어올리기 위한 것"이라며 "A씨가 그동안 쌓아왔던 이미지가 HP의 제품과 서비스와 잘 맞는다고 판단했으며 앞으로 대규모 마케팅 활동을 전개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HP는 지난해 서울 청담동에 있는 엔써 등 유명 클럽에서 공연 형식의 프로모션 행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HP 본사 역시 지난해 힙합 가수 닥터 드레(Dr.Dre)를 기용해 '놀랄 만한 일을 하자(Let's Do Amazing)'는 내용의 광고 캠페인을 하면서 음향 기능을 강화한 '엔비 14 비츠 에디션'을 공동 개발해 내놓기도 했다. 이 밖에도 한국HP는 지난해 프로야구단 넥센 히어로즈의 광고 스폰서로 참여해 선수들의 모자와 전광판에 HP로고를 노출시켰다.

◆IT기업도 이제 "女心을 잡아라"

카메라업체 캐논코리아는 밸런타인데이를 앞두고 10~20대 여성들을 겨냥,초콜릿 등을 만드는 방법과 함께 음식 사진 잘 찍는 법을 교육하는 '쿠킹앤포토'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캐논코리아는 MBC의 인기 쇼 프로그램 무한도전이 진행하는 '무한도전 사진전'을 유치해 지난달 22일부터 서울 압구정동 캐논플렉스에서 개최하고 있다. 캐논코리아는 지난해부터 젊은 여성들을 집중 공략하는 다양한 마케팅 활동을 펼치고 있다. 올림푸스한국은 자사 미러리스 카메라 '펜(PEN)' 시리즈 애호가들을 '페니아(PENia)'로 부르고,이들의 커뮤니티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젊은 여성층 사이에서 널리 확산된 커피전문점 문화를 겨냥한 마케팅도 활발하다. IT주변기기 업체 한국벨킨은 홍익대 주변,삼청동,대학로 등의 인기 카페에 자사 무선 인터넷 공유기를 설치해 '벨킨 와이파이 존'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HP도 지난해부터 세븐몽키스 등 커피전문점과 제휴를 맺고 서울 시내 카페 30여곳에 프린터를 설치,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 등을 바로 출력할 수 있는 체험형 마케팅을 실시하고 있다.

조귀동 기자 claymo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