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10년 'E10 리포트'] (10) 韓流에 빠진 6700만 태국인 … 메콩강 5國 '바트 경제 통합'도 탄력
태국 자동차 시장은 일본의 텃밭이다. 현지에 생산공장이 있는 일본 자동차 브랜드가 7개에 달한다. 일본계 외엔 GM이 유일하게 공장을 운영 중이다. 태국 현대자동차 딜러를 일본인이 맡고 있을 정도다. 현대차는 1998년 외환위기를 겪으며 태국 법인을 철수시켰다. 현대 · 기아차의 태국 시장 점유율은 3%를 밑돈다.

중국 정부는 작년 7월 태국과 정부 간 합작 형태로 방콕~라용 간 240㎞ 길이의 고속철을 짓기로 했다. 태국 철도청이 2024년을 목표로 추진 중인 총 연장 3039㎞짜리 고속철 사업의 첫 단추다. 약 400억달러 규모의 대형 프로젝트에 중국이 한발 먼저 다가간 셈이다.

13일 방콕 최대 쇼핑몰인 시암파라곤 1층.명품 화장품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복도 너머로 한국 걸그룹인 소녀시대의 히트곡 '오'가 낭랑하게 울려 퍼진다. 시내를 관통하는 전철 안에선 '한국 공짜 여행'을 경품으로 내건 LG전자 광고가 쉴 새 없이 흘러나왔다. 지난해 태국에서 100만명의 관객을 끌어모은 최대 히트 영화인 '무엉껑'은 한국에서 90%가량을 촬영했다고 한다.

태국에서 한 · 중 · 일 3국 간 치열한 각축전이 벌어지고 있다. 인도차이나 반도의 '맹주'이자 인구 6700만명(2009년)의 내수 시장을 보유하고 있는 데다 연간 160만대의 자동차를 생산할 정도의 탄탄한 제조 기반이 태국의 매력이다. '터줏대감' 일본에 맞서 한국과 중국은 각각 '한류'와 '달러 투자'로 도전하는 형국이다.

◆부활하는 6700만명 태국 경제

아시아 3국이 태국에 주목하는 이유는 탄탄한 잠재력이다. 태국은 지난해 대규모 반정부시위 등 정치 불안에도 불구하고 전년 대비 7.9%의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을 달성했다. 올해도 4%대의 성장을 예상하고 있다.

외국의 금융 자본들이 태국의 가능성에 '베팅'하면서 바트화 가치는 작년 초부터 고공 행진을 거듭, 1년 동안 11% 상승했다. 아시아에서 엔화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권오석 KOTRA 방콕센터장은 "경제가 활력을 찾으면서 물가도 꿈틀하고 있다"고 말했다. 방콕 중심가에 있는 그랜드밀레니엄호텔은 이달부터 하루 투숙료를 종전 105달러에서 128달러로 인상했다. 인도 러시아 등에서 관광객들이 몰려오자 값을 올리기로 결정한 것이다.

태국 베트남 라오스 미얀마 캄보디아 등 메콩강 유역 국가들에 대한 종합 개발 사업인 GMS 프로젝트도 태국의 미래를 밝게 하는 요인이다. 이 프로젝트는 아시아개발은행(ADB)이 주도해 1992년 첫 삽을 떴으며 올해까지 총 141억달러,63건의 사업이 완료될 예정이다.

태국 국가경제사회개발이사회(NESDB)의 파이로떼 포티용 수석 고문은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인도차이나 반도 5개국의 교통 통신 환경 무역에 관한 각종 인프라들이 획기적으로 개선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창렬 CJ GLS 태국 법인장은 "태국을 중심으로 라오스 캄보디아 미얀마 베트남 등이 '바트 경제권'으로 통합될 가능성이 높다"며 "태국은 인근 국가로 진출하기 위한 교두보"라고 설명했다. 태국은 라오스와 미얀마의 최대 교역국이자 캄보디아의 두 번째 교역국이다.

◆한 · 중 · 일의 치열한 경합

높은 성장성에도 불구하고 태국 시장을 공략하기는 쉽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일본이란 벽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태국 투자청에 따르면 1월 현재 이 나라에 진출한 외국인 투자기업 가운데 절반이 일본계다. 하승범 KOTRA 방콕센터 부장은 "태국 사람들한테 물어보면 일본 사람을 외국인이라고 느끼지 않는다고 서슴없이 말할 정도"라고 말했다.

작년 하반기부터 롭부리 지역에 건설 중인 2억5000만달러 규모의 태양열 발전소도 솔라 패널 공급자는 샤프가 선정됐다. 일본은 GMS 프로젝트에도 총 5000억엔을 투자할 예정이다

이에 비하면 한국의 태국 시장 공략은 늦은 편이다. 중국만 해도 막대한 외화로 인프라에 과감히 투자하는 데다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태국 소비 시장을 점차 장악해 가고 있다. 태국의 양대 수입국은 일본과 중국으로 각각 점유율(작년 1~11월 기준)이 20.81%,13.32%에 달한다. 한국은 미국 말레이시아 아랍에미리트(UAE) 등에 이어 6위로 태국 수입 시장에서 4.46%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다행인 것은 한 · 태국 자유무역협정(FTA)이 작년 1월 발효됐다는 점이다. 4~5년 전부터 한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도 후발주자인 한국에는 큰 무기다. 한국 드라마와 영화를 수입하는 STG의 암파이 수티스타르퐁 사장은 "한류에 빠져 있는 여성 소비자들이 수백만명에 달한다"고 말했다. 작년에 열린 동방신기 콘서트의 티켓 7000장은 한 시간 만에 매진되기도 했다.

포스코는 지난해 태국에 아시아영업본부를 설치하는 등 인프라 시장에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해 말엔 박영준 지식경제부 차관이 태국과 라오스 지역을 방문,투자 환경에 대한 조사를 벌였다. 태국 정부도 한국에 대한 '러브콜'을 지속적으로 보내고 있다. 산업 정책을 총괄하는 태국 공업부 장관이 현대 · 기아차를 끌어들이기 위해 이달 중 방한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방콕(태국)=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 E10(이머징파워10개국)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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