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우리나라 국민이 정부 고위직 인사에 특히 높은 불신을 보였다는 여론조사 결과 보도가 있었다. 한마디로 불공정분야 1위가 정부 고위직 인사라는 것이다. 최근에는 이명박 정부가 '작은 정부''머슴론'을 강조하며 조직을 통폐합하고서도 실제론 공무원 채용을 더 확대했고 특히 청와대의 경우 비서관(1급) 이상이 취임 초보다 21% 이상 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큰 정부'의 굴레에 빠졌을 뿐만 아니라 작년 말 집권 4년차 진용을 위한 인사 개편으로 영남 편중 현상이 심화됐고 특정 대학 출신 비중이 더 높아졌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지난해 8 · 8 개각 당시에는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를 필두로 장관후보자들이 낙마하더니 이번에는 감사원장 후보자가 야당뿐만 아니라 여당에서까지 사퇴 압력을 받는 희한한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어차피 선거로 집권한 마당에 자기 사람을 기용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지방선거에서 대승을 거두고도 옹졸한 태도로 일관해 정치력의 한계를 드러낸 야당의 지나친 흠집내기도 칭찬 받을 일만은 아니다. 국회의 고위공직자 인사청문회 사례들을 보면 정책 능력이나 자질보다는 부동산 투기,세금 탈루,병역 의혹 같은 요인들이 언론보도를 통해 증폭돼 임명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았다. 대통령의 인사권 행사가 정치적 이유로 저지되거나 방해될 여지가 많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인사 실패는 정부여당이 입버릇처럼 되뇌듯 정치공세라고만 하기에는 너무 잦고 일상적인 현상이 돼 버렸다.

돌이켜 보니 이명박 정부는 출범 당시부터 이제까지 줄곧 인사 시비로 휘청거렸다. 왜 이런 일이 끊이지 않는 것일까. 하지만 그 까닭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사람들은 '그럴 줄 알았다'며 이젠 지겹다는 표정이다. 더 이상 기대할 게 있겠느냐는 눈초리다. 결국 정권 출범 당시부터 불거진 인사 편중,불공정 문제는 하나도 달라진 게 없다는 얘기다. 사람도 그렇지만 정권도 성품을 바꿀 수 없는 것인가. 반성을 모르는 것일까,아니면 반성을 해도 무감각,무능한 탓일까.

우리가 원하는 정부를 집약한다면 언제나 빼놓을 수 없는 모습이 믿음직한 정부일 것이다. 정부 신뢰는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 발판이자 조건이고 또 그 결과이기도 하다. 그 신뢰는 정부가 얼마나 유능하고 일 잘하고 책임성 있으며 공정하고 윤리적인지에 따라 좌우된다. 그 중 인사에 대한 신뢰야말로 첫째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금과옥조처럼 회자되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그나마 청문회라도 하게 돼 있어 문제점이 드러날 수 있는 게 불행 중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그러나 국민은 불안하다. 북한의 도발로 인한 안보 불안이나 전국적 재앙으로 돼 버린 구제역 사태로 정부의 능력을 의심하게 된 마당에 이제 고질병처럼 된 고위직 인사 스캔들을 보며 토끼 해를 출발해야 하는 국민들의 무겁고 답답한 마음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래도 낙관이 있어야 살 수 있기에 사람들은 다음 정부는 어떨까,이 고질적이고 한심스러운 인사실패를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갖고 싶다. 차기 대권 주자 반열에 오른 사람들이,정치적 소속이나 성향을 불문하고,나름대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소신과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그렇지만 전직 경찰청장 등 고위공직자들이 '함바게이트'로 줄줄이 수사를 받는 참담한 상황에서 우선 남은 임기 동안만이라도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가 인사 문제를 바로잡아 주었으면 하는 것이 소박한 희망사항이다. 거듭된 인사 실패로 다른 분야에서의 업적마저 모두 까먹고 마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홍준형 <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