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소,도메네고,니콜로 세 사람이 동업 관계를 맺었다. 토마소는 1472년 1월1일에 760두카트를 투자했고,4월1일에 200두카트를 인출했다. 도메네고는 2월1일에 616두카트를 투자했고,6월1일에 96두카트를 인출했다. 니콜로는 2월1일에 892두카트를 투자했고,3월1일에 252두카트를 인출했다. 1475년 1월1일에 그들은 자기들이 3168두카트 13½ 그로소를 얻었음을 알았다. 각자 받아야 할 정당한 몫을 구하라.'

15세기 이탈리아 상인층 자제들이 상업학교에서 공부하던 연습문제의 사례다. 이는 단순한 소매상이나 보부상 수준을 넘어 유럽 대륙 전체를 무대로 복잡다기한 동업 관계가 맺어지던 실제 상업 세계를 반영한다. 이런 상황에서 자기 사업의 실태를 명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그러기 위해 모든 거래를 장부에 일일이 적어두고 또 그것을 합리적으로 분류하고 계산하는 방법이 발전했는데,그 정점에 이른 것이 복식부기(double-entry bookkeeping)였다.

누가 이 방식을 발명했는지는 불명확하지만 대략 1300년께 이탈리아 회계사들이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대수식에서 힌트를 얻어 개발하지 않았을까 짐작된다. 대수식에선 한쪽에서 플러스인 것이 다른 쪽으로 넘어가면 마이너스가 된다. 이처럼 모든 거래가 발생할 때마다 차변(借邊)과 대변(貸邊)에 같은 금액을 계상함으로써 사업을 조직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복식부기의 핵심이다. 이런 방식을 '베니스 방식(alla veneziana)'이라고 부른 것을 보면 아마도 베니스 상인들에 의해 개발됐을 가능성이 있다.

복식부기는 주로 이탈리아에서 많이 쓰였으며 북유럽에는 훨씬 늦은 시기에 도입됐다. 예컨대 16세기에 유럽 최고의 상업 가문 중 하나였던 푸거(Fugger) 가도 복식부기를 사용하지 않았다. 14세기에 이탈리아 상인들이 점진적으로 복식부기를 채용해 간 것은 분명하다. 중세 이탈리아 상인 가운데 가장 많은 기록이 보존된 프란체스코 디 마르코 다티니의 경우 1366년부터 1410년까지 회계장부가 남아있는데,1383년 이전에는 장부가 서술문 형식으로 돼 있었다.

이 시기에는 그의 사업 활동의 많은 면모를 볼 수는 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사실,즉 그의 사업이 수익을 내고 있는지 손해를 보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후대의 우리뿐 아니라 다티니 자신도 자기 사업 현황을 대충 감으로 짐작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1383년 이후에 복식부기를 사용한 이후에야 사업의 실체를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사실 복식부기 방법이 알려진 후에도 많은 경우 장부는 매우 허술하게 기록됐다. 당시 상인들은 요즘처럼 차변 · 대변의 숫자가 완벽하게 맞아떨어지지 않고 '대략' 맞는 정도로도 만족했다. 무엇보다 이상한 것은 수지결산을 제때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실 부기의 목적은 결국 수지결산에 있지 않은가. 그런데 15세기만 해도 상인들은 오랜 기간 결산을 미루기 일쑤였고,때로는 장부 책 마지막 쪽이 다 채워질 때 가서야 결산을 하기도 했다. 냉철한 기준에 근거한 합리적 회사 운영 방식은 아직 더 기다려야 했다.

복식부기를 완전한 형태로 정리해 책으로 출판함으로써 복식부기의 아버지라 불리게 된 사람은 베니스에서 활동한 수학자 루카 파촐리(1445~1517)다. 그의 저서 《산수,기하학,비례와 비례적인 것들의 대전(Summa de arithmetica,geometria,proportioni et proportionalita,1494,1523)》은 웬만큼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이 배울 수 있는 수학 입문서다. 점성술,건축,조각,우주론,군사,심지어 신학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분야를 수학적으로 설명하는 내용이다. 이 가운데 '계산과 기록'이라는 장에서 상업 산수와 부기의 내용이 체계적으로 정리돼 있다. 이 부분은 따로 독립돼 나중에 각국어로 번역 출판됐으며,19세기까지도 독일과 러시아에서 복식부기 입문서로 활용됐다.

그의 방법을 따르자면 사업 활동은 세 가지 종류의 장부에 순차적으로 정리된다. 우선 모든 거래는 그때그때 비망록에 적어두고,다음에 그 내용을 분개장(分介帳)에 정리한 후 최종적으로 원장(元帳)에 복식부기 방식으로 분류해 기입한다. 매년 규칙적으로 결산을 한다. 결산을 하려면 따로 종이 한 장을 마련해 왼쪽 편에는 차변 총액,오른쪽 편에는 대변 총액을 열거한 후 두 항목을 모두 합산해 비교한다. 손실이나 이익을 합하면 양쪽 수치는 완전히 같아야 한다. 만일 수치가 일치하지 않으면 계산 실수나 누락,부정이 있다는 의미이니 그 복잡한 계산을 처음부터 다시 검토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수입이 지출보다 많으면 사업이 성공한 것이고,그 반대라면 잠 못 드는 밤이 찾아올 것이다.

파촐리는 이 부분에서 '신이시여! 신실한 저희 신자들이 그같은 곤란을 겪지 않도록 보호하소서!'라는 기도의 말씀을 잊지 않았다. 하여튼 이렇게 장부 정리를 잘 해야 수익과 손실을 분간할 수 있고,사업의 추세를 잘 판단할 수 있다. 또 그래야 훌륭한 동업 관계도 유지된다. '계산을 자주 하면 우정이 오래간다'는 것이 그의 현명한 주장이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아라비아 숫자의 도입이 이런 계산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는 점이다. '1934?C97' 같은 간단한 계산도 알파벳 숫자로 할 때는 실로 복잡한 일이 되고 만다. MCMXXXIV와 XCVII를 곱하는 것은 (1000-100+1000+10+10+10-1+5) 곱하기 (100-10+5+2)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유럽 자본주의의 발전은 합리적 계산의 확산과 깊은 관련이 있다.

주경철 <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