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을 헤치면서 유달산(228.3m)을 오른다. 칼날 같은 암봉들이 많아 산세가 제법 험하다. 군량미를 쌓아놓은 낟가리처럼 보이게 해 왜적을 도망가게 했다는 노적봉을 지나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다. 달선각 유선각 관운각 등 정자를 지날 때마다 멈춰 서서 목포시내의 야경을 내려다본다. 천상의 별보다 더 많은 별이 지상을 수놓고 있다. 우린 저런 천상을 지옥이라 여기며 사는 못난 중생이다.

◆'호남의 개골산' 유달산

유달산 정상,사람이 죽으면 영혼을 심판받는다는 일등바위에 오른다. 어둠과 세찬 바람 속에서 기다린 지 두 시간,마침내 영암 쪽 산봉우리 위로 아침 해가 둥실 떠오른다. 갓 태어난 햇살이 헤드라이트처럼 바다를 비추자 다도해의 섬들이 하나둘 깨어나기 시작한다. 명량대첩 후 이순신 장군이 108일간 주둔하면서 전력을 재정비했던 용머리 모양을 한 고하도가 코앞이다. 내년 말 준공 예정인 목포대교(3.18㎞)의 주탑과 교각들이 바다 가운데 우뚝하다. 저 다리가 완공되면 영산강하굿둑을 우회하지 않고 목포 죽교동에서 고하도로 곧장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호남의 개골' 유달산의 투구 · 고래 · 종 · 나막신 · 거북 등 온갖 사물 형상을 닮은 만물상을 바라보며 산을 내려간다.

고래바위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목포에서 유일하게 문화재를 보유한 절집 달성사로 내려간다. 극락보전에는 얼굴에 대한 콤플렉스를 지녔을 법한 사각형 얼굴의 목조아미타삼존불이 좌정하고 계신다. 마음에 둥근 소리(圓音)를 지녔으면 그만이지 부처가 어디 중생처럼 얼굴 뜯어먹고 사는가. 그런데 일초(고은 시인)가 스승 중장 혜초의 하산에 충격받고 방황의 날을 보내던,한때 거지 노릇을 하며 보냈다는 유달산 거지굴은 어디쯤에 있을까. 다시 주 등산로로 올라와 내려가다 대포를 쏘아 정오를 알려주던 옛 오포대 복제 대포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전쟁무기인 대포가 알람 기능을 대신해주던 시대가 있었다. 꿈 같은 옛날이다. 노적봉을 돌아보다 영락없이 여자의 음부를 닮은 나무를 만난다. '노적봉 여자나무'라 부르는 이 팽나무는 다산 신앙의 대상이다.

◆근대문화유산의 보고(寶庫)가 된 일제 잔재

유달산 남동쪽 기슭 아래 광무 4년(1900)에 지어져 1907년까지 일본 영사관으로 쓰였던 옛 일본 영사관(사적 제289호)을 찾아간다. 붉은 벽돌로 지은,우진각 지붕을 한 르네상스 양식의 2층 건물이다. 인과응보를 받는지 이 건물은 목포부청사 · 목포시립도서관 · 목포문화원 등으로 용도를 바꾸면서 중음신(中陰身)처럼 떠돌고 있다. 바로 아래 길가엔 우리나라 최초의 도로인 국도 1 · 2호선 기점비가 서 있다. 의주가 종착지인 1번 국도와 부산이 종착지인 2번 국도가 이곳에서 비롯했다. 국도 2호선에 동원된 주 노동력이 동학농민 전쟁 때 붙잡힌 '폭도'들이었다니 얼마나 통분할 일인가.

일본인 우치다니 만페이(內谷萬平)가 우리나라 서원 양식으로 꾸민,전남에서 제일 크다는 이훈동정원과 심상소학교(유달초등학교) 강당을 거쳐 일본이 경제수탈을 위해 세운 국책회사이자 착취기관인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으로 발길을 옮긴다. 목포근대역사관으로 변신한 건물 1층에는 목포의 옛 모습 사진 80여점을 전시해 놓았다. 눈길을 끄는 것은 동척 당시 대형 금고가 있었던 방이다. 안에 1904년 일본인 영사가 목포 고하도에서 육지면을 처음 재배한 것을 기념해 세운 고하도 '조선육지면발상지지' 빗돌을 재현해 놓았다.

목화가 많이 난다 하여 목포라는 이름이 유래했다는 얘기가 있을 만큼 옛 목포는 이름난 목화재배지였다. 일제는 재배한 면화를 목포면화주식회사에서 가공해 제 나라로 공출했다. 종4품 무관 만호가 배치되었다 해서 만호진이라고도 불렀던 조선시대 수군 진영이 있었던 목포진으로 간다. 450여년 동안 목포진이 있었던 만호동 야산 꼭대기에는 달랑 '목포진유적'이라 적힌 자연석 하나뿐이다. 언덕받이 집들의 담장 · 축대에 쓰였던 성돌들이 '컴 백 홈'을 외치고 있다.

◆'목포의 눈물' 발원지 삼학도

유달산과 더불어 목포를 상징하는 또 하나의 랜드마크인 삼학도로 향한다. 길목엔 아구찜거리,건어물을 취급하는 해산물상가,목포종합수산시장 등이 연달아 있다. 조피볼락(우럭) · 갈치 · 조기 등을 말리는 건조대에서 풍기는 비릿한 냄새가 항구의 정체성을 확인한다. 수입갯장어가 어찌나 큰 지 입을 쩍 벌어지게 한다. 가게마다 국산 홍어,칠레산 홍어 등을 썰어 상자에 담느라 부산하다. 출어를 기다리고 있는 크고 작은 어선들이 즐비한 선창을 지나면 곧바로 삼학도다.

옛날 유달산에서 무술을 연마하던 젊은 장수에게 반한 세 처녀가 무사를 기다리다 지쳐 죽어서 세 마리 학으로 환생했으나 공교롭게도 무사의 활에 맞아 유달산 앞바다에 떨어져 다시 죽었는데 거기서 솟아난 세 개의 섬이 삼학도라고 한다. '마초'에게 반해 두 번이나 생을 버린 세 처녀의 재수 옴붙은 러브 스토리가 삼학도 출생의 기원이다. 채석장 · 매립 등으로 망가졌던 삼학도는 2003년부터 시작한 복원공사로 섬 느낌을 찾아가고 있다.

석탄 운송에 쓰였던 삼학도선을 지나 가수 이난영(1916~1965)이 잠든 대삼학도 난영공원으로 간다. 2006년 이난영은 파주 용미리 공동묘지에서 옮겨와 대삼학도 중턱 배롱나무 아래 다시 묻혔다. 노래비 위 스위치를 누르자 '목포의 눈물'이 흘러나온다. 초등학교를 중퇴한 뒤 조선면화주식회사에 다녀야 했던 16세 여공에서 일약 ok레코드사 전속가수가 된 이난영 개인에게 이 노래는 얼마나 큰 기쁨의 노래였을까.

◆목포 문화의 회랑(回廊) 갓바위 일원

용해동 입암산 기슭은 목포문학관 · 남농기념관 ·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등이 밀집한 문화의 회랑이다. 목포문학관 들머리엔 김현(1942~1990)문학비가 있다. 앞면에는 고인의 브론즈 흉상과 자필 원고가 부조돼 있고 뒷면엔 황지우 시인이 영전에 바친 시가 새겨져 있다. "먼 바다 소리 먼저 듣고/ 큰 거북이 서둘러 간 뒤/ 투구게들,어,여기도/ 바다네,그대 몸 나간 진흙 文體에/ 고인 물을 건너지도/ 떠나지도 못하고 있네."(시 '비로소 바다로 간 거북이-김현 선생님 영전에' 부분)

구체적인 작품 분석을 바탕으로 실제비평을 한 뛰어난 비평가로 후배 비평가들의 멘토가 되었던 김현.그 큰 '거북이'가 죽자 '투구게'들은 "우리는 이제 한국 유일의 독자를 잃었다"며 그의 죽음을 얼마나 애도했던가. 바닷가로 나가 해상보행교를 걸으며 갓바위(천연기념물 제500호)를 조망한다. 소금기 머금은 서남해 바다의 파도와 안개라는 두 조각가는 오랜 시간과 인내로 저렇게 벌집 모양의 진기한 풍화혈(風化穴)을 조각해냈다. 나처럼 쉽게 낙망하고 쉽게 포기하는 사람은 삶에서 아무 걸작도 남기지 못한다. 저 멀리서 영산강하굿둑이 느릿느릿 기어가고 있다. 지가 무슨 지렁이처럼 무척추동물이라도 되는가?

안병기 여행작가 smreoquf@hanmail.net


◆찾아가는 길

서해안 고속도로→평택→당진→서천→군산→고창→무안→목포


◆맛집

꽃게무침,홍탁삼합,갈치조림,민어회,세발낙지 요리를 목포 5미(味)로 꼽는다. 홍어회의 구릿한 냄새와 톡 쏘는 맛 때문에 먹지 못한다면 아쉬운 일이다. 홍어회 한 점을 입안에 넣고 오물거리면 알싸한 기운이 온 몸으로 퍼진다. 홍어회처럼 맛으로 정신을 활짝 깨우는 오묘한 음식이 어디 있는가. 홍탁삼합(홍어,돼지고기,김치+막걸리)을 맛보며 남도의 미각에 취할 일이다.

23년 전통을 자랑하는 용당2동 주민센터 부근 금메달식당(061-272-0606)은 국산 홍어만 써 홍어삼합과 홍어찜,홍어회,홍어탕을 요리하는 곳이다. 홍어탕(1인) 2만원,홍어회(2~3인) 7만원,홍어삼합(2~3인) 8만원,홍어회(3~4인) 12만원,풀코스(4인) 20만원.


◆여행 팁

목포는 서해남부 도서지역으로 가는 여객선들이 출항하는 교통 허브다. 목포와 압해도가 압해대교로 연결돼 있다. 목포터미널에서 15분 정도 차를 달려 압해도 송공선착장에서 배로 30~40분이면 암태도에 도착할 만큼 예전보다 해상교통이 편리해졌다. 송공선착장에서는 암태도 말고도 임자도,증도 등 인근 섬으로 가는 배를 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