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의 신작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는 극단적인 시장주의자들('그들')이 공개적으로 언급하지 않는 자본주의의 이면을 들여다 본 책이다. 3년 전 출간된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세계화와 개발도상국에 초점을 맞춘 데 비해 이 책은 자본주의 국가들의 보편적 문제인 성장 정체와 임금 불균형,정부 정책에 대한 찬반 논의 등을 폭넓게 다루고 있다.

저자는 스스로 반(反) 자본주의자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또 많은 문제점과 제약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는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좋고 강력한 경제 시스템이라고 전제한다. 다만 지난 30여년간 세계를 지배해온 특정 자본주의 시스템,즉 '자유시장주의'가 유일한 정답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시장은 결코 완전하게 객관적이거나 자유롭지 않고 시대에 따라 범위가 변하는 정치적인 속성을 가졌다는 것이다.

1819년 면직공장에서 일하는 9세 미만 아동들의 근무시간을 12시간 이내로 제한했던 '면직공장 규제법'은 당시엔 '노동할 자유'와 '고용할 권리' 등 시장과 계약의 원칙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강력한 공격을 받았다. 투표권이나 판결,공직,대학입학 자격 등 과거 자유롭게 거래되던 대상들도 '정치적 결정'에 의해 시장에서 밀려났고 지금은 누구도 이에 대해 이의를 달지 않는다.

저자는 우리가 어떤 규제 이면에 있는 도덕적 가치에 수긍하지 않을 때 그것을 '규제'로 여긴다고 지적한다. 공정한 시장을 성립해 활성화시키는 선의의 규제들은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또 우리가 당연한 진실로 받아들이는 여러 명제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반박한다.

선진국은 서비스 · 지식 산업에 치중하면서 탈산업화하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일까,잘사는 국가의 국민 1인당 임금이 월등하게 높은 것은 기술과 효율성의 상대적 우위 때문일까,금리와 이자를 정말 시장이 정하는가,부자를 더 부자로 만들면 과연 모두 부자가 되는 걸까 등의 질문이 흥미롭다.

한 예로 저자는 스웨덴의 버스 기사가 인도의 버스 기사보다 50배나 높은 임금을 받는 것은 노동력의 품질이나 생산성의 차이로만 설명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오히려 스웨덴 정부의 이민 통제 덕분에 자국의 노동자가 인도나 다른 저임금 국가의 노동자들과 직접 경쟁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라고 반박한다.

결국 사람들이 내리는 결정,특히 규칙을 정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들의 결정이 시장을 형성하고 일정한 방향으로 결과를 유도한다는 것이다.

장 교수는 "자본주의가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고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으로 작동하는지 이해해야 경제 시민들이 기업과 정부,국제기구 등에 보다 나은 방향을 요구할 수 있다"며 "시장을 제대로 이해할수록 시장의 자유를 해친다는 이유로 모든 규제에 반대하지 않게 되며 신자유주의에 대한 무조건적 장밋빛 환상을 벗을 수 있다"고 말한다.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