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의 비대칭성’이 존재하는 시장은 도덕적 해이를 초래한다
[경제교과서 뛰어넘기] (24) 도덕적 해이
3년 전인 2007년,연예계는 스타들의 '학력 위조'로 논란의 중심에 서있었다.

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의 '예일대 박사학위 위조'로 촉발된 파문이 방송 · 연예 · 문화계까지 확산되었고,대중의 사랑을 받으며 부와 명예를 축적해온 스타들이 한순간에 '학력 위조' 논란에 휩싸였다.

학력을 위조한 것으로 드러난 스타들 중 일부는 공개 사과 후 출연하던 프로그램에서 중도하차했고,일부는 검찰 조사까지 받았다.

학력을 중시하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와 불완전한 검증시스템이 이들로 하여금 학력 위조의 계기를 제공했을 수는 있지만,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들이 한 거짓말과 땅에 떨어진 윤리의식(도덕적 해이)을 비판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해이해지는 것은 반드시 윤리적 · 도덕적인 문제에 국한되는 것일까.

인간의 '도덕적 해이'가 경제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을까.

있다면 과연 어떤 결과를 초래하고,이를 방지하기 위한 수단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시장실패'는 시장이 불완전해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지 못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시장실패'의 요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때도 시장에서의 자원 배분은 비효율적이 된다.

'도덕적 해이'는 보험업계에서 사용되던 용어로,거래의 양 당사자(보험회사 vs 보험가입자)가 갖고 있는 정보가 서로 균등하지 않을 때(정보의 비대칭성) 나타나며,주로 보험회사가 보험가입자의 행동을 항상 감시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사람들은 사회적 · 경제적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지진과 홍수 등 자연적인 재해뿐 아니라 교통사고와 화재 등 인위적인 사고의 위험에도 항상 노출돼 있다.

사람들은 이러한 사고를 당해 받을 수 있는 경제적 손실을 보험에 가입함으로써 구제받고자 한다.

보험거래의 양 당사자 중 보험회사는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사고의 위험이 낮은 사람들만 보험에 가입하기를 바랄 것이다.

반대로 보험에 가입하려는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자신이 사고의 위험에 얼마나 노출돼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감춰 보다 싼 보험료로 자신과 자신의 재산을 위험으로부터 구제받고자 할 것이다.

따라서 보험시장은 '정보의 비대칭성'이 항상 존재하는 시장이라고 할 수 있다.

보험회사는 보험료를 높게 책정한다면 이러한 정보의 비대칭성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손해를 막을 수 있겠지만,그렇다고 무턱대고 보험료를 높게 책정할 수만은 없다.

높은 보험료는 사고의 위험이 낮은 사람의 보험 가입을 막아 보험회사가 사고의 위험이 높은 사람들과만 거래하는 현상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대칭적인 정보로 인한 문제는 보험가입 후에도 발생한다.

화재보험이나 의료보험에 가입한 사람은 화재나 질병으로 인한 피해를 보험회사가 보상해 줄 것이므로 보험 가입 후 화재 방지나 건강 유지를 위한 노력을 전보다 게을리하게 된다.

또한 보험회사는 보험에 가입한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수 없으므로 이들이 화재 방지나 건강 유지를 위한 노력을 얼마나 하는지 또는 보험 가입 전과 비교해 노력의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파악하기 어렵게 된다.

따라서 보험회사가 보험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와 같이 보험 가입 후 발생하는 보험가입자의 행동 변화를 '도덕적 해이'라고 한다.

'도덕적 해이'는 비단 보험업계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다. 2007년 미국에서 발생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도 도덕적 해이로 인해 촉발된 것으로 인식된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론'(subprime mortgage loan)은 신용도가 낮은 사람들에게 집값의 상당 부분을 대출해주는 대신 높은 이자율이 부과되는 대출 프로그램이다.

대출자들은 향후 집값이 오를 것으로 예상해 모기지론을 통해 주택을 구매했고,금융기관들은 모기지론의 투자수익률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점에 현혹돼 모기지론에 막대한 투자를 단행했다.

하지만 집값 폭락으로 대출금을 갚지 못하는 이들이 속출했고,이로 인해 유수의 모기지업체가 도산했다.

또한 모기지론에 투자한 금융기관들도 연쇄적으로 지급불능 상태에 빠지거나 붕괴 위험에 빠지게 되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도덕적 해이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하는 이들은,우선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를 지적한다.

금융기관들은 높은 이자율과 투자수익률로부터 얻어지는 이자소득과 투자이익을 추구하면서 안전성을 도외시하였다.

그 결과 금융기관들은 엄청난 이익을 내기는 했지만,위기에 취약해졌고 예금자 보호 등 안전장치도 갖추지 못했다.

또한 이들은 금융기관뿐 아니라 금융감독 당국의 도덕적 해이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한 원인이라고 평가한다.

금융감독 당국은 금융기관의 무모한 투자를 관리 · 감독해야 했지만,9 · 11 테러 이후 침체된 미국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오히려 금융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그 결과 서브프라임 모지기론과 같은 복잡한 파생상품의 개발이 촉진되었고,이로 인해 금융거래의 투명성과 리스크 관리가 저해돼 서브프라임 사태가 촉발되었다는 것이다.

'도덕적 해이'의 사례는 우리나라에서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민간부문의 실패를 만회하고 지원하기 위해 정부가 시장에 개입할 때 '도덕적 해이'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서브프라임 사태와 남유럽 재정위기로 인한 세계경제의 침체는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에도 그 영향을 미쳐,개인파산을 신청하고 개인회생제도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종종 발생하고 있다.

개인파산은 채무를 변제할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 채무를 정리하기 위해 파산을 신청하는 제도로,법원으로부터 개인파산 신청이 받아들여지면 채무에 대한 변제 책임을 면제받게 된다.

또한 개인회생제도는 법원이 강제로 채무를 조정해 개인이 파산에 빠지는 것을 구제해주는 것으로,파산의 위험에 빠진 사람이 일정기간 채무를 변제하면 나머지 채무를 탕감해준다.

문제는 이들 제도가 채무를 변제하도록 유도하기보다는 채무를 면제해주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어 변제 능력이 있음에도 개인파산이나 개인회생제도를 통해 채무를 면제받는,다시 말해 채무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길 수 있다는 데 있다.

더욱 큰 문제는 일부 파산 전문 변호사와 브로커들이 개인파산과 개인회생을 부추기는 광고홍보물을 통해 채무자들을 도덕적 해이의 길로 인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개인파산 및 개인회생제도를 악용해 발생하는 금융기관 등 채권자의 경제적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개인파산 및 개인회생 심사를 강화하고 채권자의 재산 및 변제 능력 등 채권자에 대한 정보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얼마 전 이명박 대통령이 건설업계의 도덕적 해이를 질타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의 건설업계는 부동산 투기 열풍이 불자 전국을 아파트 공사 현장으로 만들었다. 실수요에 비해 터무니없이 많은 아파트가 건설되고 분양가 또한 턱없이 높게 책정되면서 분양되지 못한 채 빈집으로 남아 있는 아파트들이 곳곳에 쌓였고,상당수 건설회사들이 자금난에 허덕이게 되었다.

미분양 아파트로 인한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정부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국민의 세금으로 미분양 아파트를 매입하는 등의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이러한 정부의 조치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건설업계의 도덕적 해이를 유발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앞뒤 가리지 않고 무조건 짓고 보자는 식의 무분별한 투자계획으로 인한 건설회사들의 위기를 정부가 세금으로 구제해주면 "일단 지어놓으면 팔릴 테고,안 팔려도 정부가 도와줄 것"이라는 식의 도덕적 해이가 건설업계에 만연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미분양 아파트 속출로 인한 건설업계의 위기가 경제 성장과 고용에 주는 타격이 큰 만큼 정부의 지원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정부 지원이 건설회사들의 도덕적 해이를 키울 경우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격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정부는 건설업계에 대한 지원과 더불어 구조조정을 실시하고 업계 스스로 자구노력을 다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현재 정부는 미분양 아파트가 쌓여 있는 건설회사에는 새로운 사업의 인 · 허가와 사업자금 대출을 중단하거나 제한하는 방안을 구상 중이라고 한다.

또한 부실한 건설회사들이 건설 사업에 참여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방지하기 위해 주택건설업 등록 기준을 강화하고,주택분양 보증 수수료를 높이거나 보증서 발급을 제한하는 방안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원식 KDI 경제정보센터 전문연구원 kyonggi96@kdi.re.kr